"첫 홈런은 중견수로 나선 2006년 현충일, 정민철 선배께"
(서울=연합뉴스) 하남직 기자 = 정근우(35·한화 이글스)는 개인 통산 99번째 홈런(6월 1일 대전 두산 베어스전)을 친 뒤 꽤 오래 홈런을 만들지 못했다.
"내가 언제부터 홈런을 치는 타자였다고. 내년에 나올지도 몰라요."
그는 특유의 유머로 100홈런에 대한 부담을 지우려 했다.
하지만 100홈런이 안긴 뿌듯함은 숨기지 않았다.
"남들에게는 대단한 기록이 아니겠지만, 내게는 특별한 기록이다. 그만큼 오래, 열심히 뛰었다는 증거니까."
정근우가 개인 통산 100홈런에 도달했다. 그는 14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2017 타이어뱅크 KBO리그 SK 와이번스와 방문경기, 1회초 선두타자로 나서 상대 선발 문승원의 시속 144㎞ 직구를 공략해 중앙 펜스를 넘겼다.
KBO리그 역대 77번째. 사실 그렇게 빛나는 기록은 아니다. 하지만 정근우에게 '기억할만한 날'이 또 생겼다.
정근우는 프로 무대 첫 홈런을 친 순간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는 "2006년 6월 6일 대전 한화전이었다"며 "조범현 감독님께서 SK 와이번스를 이끄실 때인데, 내가 중견수로 출전했다. 그리고 타석에서 프로 첫 홈런을 쳤다. 상대 투수는 '무려' 정민철 선배님이었다. 사실 나도 놀랐다"고 웃었다.
정확한 기억이다. SK 소속이던 정근우는 프로 2년 차이던 그해 현충일에 홈런을 쳤다.
정근우는 "당시까지만 해도 100홈런은 그냥 꿈과 같은 일이었다. '100홈런을 치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동시에 '내가 무슨 100홈런'이라고 냉정하게 나를 돌아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정근우는 끈질긴 수비와 탁월한 주루, 정확한 타격으로 프로 무대에서 살아남았다.
KBO리그 최초로 11시즌 연속 20도루에 성공했고, 6시즌이나 타율 3할을 넘겼다.
그런데 최근에는 홈런 기세도 만만치 않다. 2014년까지는 한 시즌도 두 자릿수 홈런을 치지 못했던 정근우는 2015년 12홈런, 2016년 18홈런을 쳤다. 올해도 홈런 5개를 생산했다.
훈련에 비례해 수비력이 상승한 만큼, 경기를 치를수록 멀리 치는 법도 터득했다.
정근우는 "예전에는 힘만 앞세우려고 했다. 경기를 치를수록 원심력 등 공을 멀리 보내는 방법을 깨달았다. 홈런이 조금 늘어난 이유"라고 했다.
특유의 악바리 근성도 100홈런을 만든 동력이다.
김태균(한화), 이대호(롯데 자이언츠), 추신수(텍사스 레인저스) 등과 2000년 캐나다 에드먼턴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우승을 일구고도 프로에 지명받지 못했던 정근우는 대학 진학을 한 뒤 이를 악물고 '살아남을 방법'을 찾았다.
아팠던 기억마저 정근우는 '행운'이라고 말한다.
정근우는 "고교 졸업 후 무턱대고 프로에 들어왔다면 3∼4년 안에 사라진 선수가 됐을지도 모른다. 대학에서 기량을 쌓고, 마침 팀에 세대교체가 필요할 때 SK에 입단했다. 나는 운이 좋은 선수"라고 했다.
작은 체구에도, KBO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로 자리매김한 정근우는 자신 있게 후배들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그는 힘겨운 2군 생활을 하는 후배들에게 "버티고 버티다 보면 꿈이 현실이 된다. '내가 가장 운이 좋은 선수'라는 자기 최면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jiks7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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