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가 투수로, 투수가 야수로…야구장의 이유 있는 외도

입력 2017-06-15 11:06  

야수가 투수로, 투수가 야수로…야구장의 이유 있는 외도

1군 엔트리 제한으로 돌발상황 발생 시 필요

부상 잦은 포수는 구단마다 '응급 포수' 미리 정해놓기도




(서울=연합뉴스) 이대호 기자 = 철저한 분업이 정착한 야구 경기에서 익숙하지 않은 자리에 들어간 선수가 깜짝 활약을 펼치는 건 색다른 볼거리 가운데 하나다.

14일 인천 SK 행복드림 구장에서 열린 SK와 한화의 경기에서는 내야수가 포수 마스크를 쓰고, 투수가 1루수 미트를 착용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SK는 8회 초 포수 이홍구가 수비 도중 손을 다쳤다. 문제는 7회 말 공격에서 교체 가능한 야수를 모두 소모해 교체해 줄 사람이 없었다는 점이다.

결국 SK는 2005년 포수 경험이 있는 2루수 나주환에게 포수 마스크를 씌우고, 1루수 제이미 로맥을 2루수로 넣었다.

1루수에는 투수 전유수를 투입하는 '고육지책'을 썼다. 다행히 '포수' 나주환과 '1루수' 전유수는 큰 문제 없이 경기를 마쳤다.

보통 프로에 입단한 야구선수는 고등학교나 대학교 때까지 다양한 포지션을 경험하기 마련이다.

2005년 두산 소속으로 SK를 상대로 포수 마스크를 쓰고 도루 저지까지 성공했던 나주환은 "캠프에서 농담으로 박경완 코치님한테 '포수 준비돼 있다'고 말했는데 정말 나갈 줄은 몰랐다"고 했다.

전유수는 "고등학교 때 1루와 2루, 외야까지 봤던 경험이 있어 긴장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만능선수는 팀에서 최소한 한 명씩 보유하고 있다.

1군 엔트리가 27명(KBO리그 기준)으로 제한된 가운데 돌발상황에 대처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부상이 잦은 데다가 보통 엔트리에 2명만 보유한 포수는 구단마다 '응급선수'를 미리 정해놓는다.

간혹 야수가 마운드에 올라가는 일도 있다. 김성한 전 감독은 1982년 타율 3할과 10승을 동시에 달성한 팔방미인이었지만, 분업화가 정착한 최근에는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다.

양상문 LG 감독은 14일 잠실 두산전을 앞두고 "유사시를 대비해 2주에 한 번 정도는 (외야수) 이형종에게 투구 연습을 시키고 있다. 연장전에 들어갔는데, 투수가 헤드 샷 퇴장을 당한 상황 등을 대비해서"라고 말했다. 2008년 투수로 입단했다가 야수로 전향한 이형종이라 가능한 일이다.

2000년 이후 야수의 투수 등판은 3번뿐이다.

지난해 KBO리그 홈런왕 최정(SK)은 2009년 6월 25일 광주 KIA전에서 연장 12회 말 등판해 폭투로 끝내기 점수를 헌납했고, 그해 5월 12일 최동수(LG)는 잠실 SK전에서 아웃카운트 하나를 잡았다.

오장훈(전 두산)은 2015년 9월 3일 마산 NC전에서 등판해 1이닝을 소화했지만, 내야수로 등록했다가 투수 전향 후 등판한 거라 엄밀한 의미에서 '야수의 외도'로 포함하기 힘들다.




KBO리그보다 1군 인원이 2명 적은 25인 로스터를 운영하는 메이저리그는 연장 '끝장 승부'까지 벌여 색다른 자리에서의 '아르바이트'가 흔한 편이다.

특히 점수 차가 크게 벌어진 경기에서 선수를 아끼기 위해 야수를 마운드에 올리는 일이 잦다.

올해만 야수의 등판이 18차례 있었다. 이중 포수 크리스 지메네스(미네소타)는 5번이나 마운드에 올랐고, 내야수 크리스티안 베탄코트(샌디에이고) 역시 4번 등판했다.

존 베이커(전 컵스)는 2014년 7월 30일 콜로라도전에서 3-3으로 맞선 16회 초 등판,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은 뒤 16회 말 끝내기가 나와 '메이저리그 마지막 야수 승리투수' 진기록을 보유했다.

4bu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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