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연합뉴스) 김선호 기자 = "빠름, 편리함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낡음, 오래됨, 느림, 불편함을 재조명하고 싶었습니다."
지난달 20일 부산 동구 수정동 산복도로의 수정아파트 4동 A408호에 사진 갤러리를 연 사진작가 윤창수(48) 씨의 말이다.
1969년 건립된 수정아파트와 '동갑'인 윤 작가는 갤러리 이름을 수정이라고 지었다.
'갤러리 수정'을 구경하려면 대중교통이 불편한 산복도로의 낡고 오래된 아파트를 찾아가야 한다.
아파트 출입구 옆에는 '조금 느리게, 때론 불편하게'라는 문구가 붙어있다.
4층까지 계단을 올라가야 볼 수 있는 갤러리는 말 그대로 불편하다.
기존 33㎡(10평) 남짓한 아파트 공간을 리모델링한 갤러리에 들어서면 영도와 중·동구 원도심이 한눈에 펼쳐지는 창문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좁지만 꽉 찬 아파트에는 현재 부산, 광주, 경남에서 활동하는 사진작가 5명의 작품을 전시한 개관기획전 '빈'이 열리고 있다.
윤 작가는 20대 청년 시절을 어머니와 함께 수정아파트에서 보냈다.
취직을 위해 이곳을 떠났지만 취미로 시작했던 카메라를 들고 20년 뒤 다시 수정아파트를 찾았다.
대부분 홀로 사는 노인의 말동무가 돼 그들의 일상을 촬영했다.
그는 노인들의 밥상, 장롱 속, 세간, 얼굴 등 남에게 쉽게 내보일 수 없는 내밀한 삶의 모습을 렌즈에 담아 2015년 1월 '수정아파트' 개인전을 열어 주목받았다.
윤 작가는 아예 직장을 접고 형 명의의 비어있던 수정아파트 4동 A408호를 두 달간 손수 리모델링해 갤러리를 차렸다.
지난달 개관일에는 전국에서 사진작가와 사진동호회원이 몰려와 젊은 사람이 떠나고 노인만 모여 사는 아파트에 새삼 활기가 넘쳤다.
윤 작가는 지자체가 예산을 들여 마련했지만 사실상 방치되던 문화거점 시설을 빌려 카페 겸 사진관인 사진카페 수정도 차려 운영하고 있다.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입소문이 나면서 갤러리와 사진카페를 찾는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윤 작가는 15일 "한 달에 1∼2번씩 테마를 바꿔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열 예정"이라며 "전시회 관람자에게 근처 식당을 이용하도록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이 모이면 쇠퇴한 산복도로도 활력이 넘치게 될 것"이라며 "50년이 다 된 아파트에 갤러리를, 산복도로에 사진카페를 연 이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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