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서울대학교병원이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경찰 물대포에 맞아 의식을 잃고 쓰러진 뒤 10개월여 만에 숨진 고(故) 백남기 농민 사망진단서를 기존의 '병사'에서 '외인사'로 수정했다. 지난해 9월 고인이 숨진 지 9개월만인데 서울대병원 개원이래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한다. 백 씨가 사망할 당시 주치의는 이 병원 신경외과 백선하 교수였다. 그런데 백 교수의 지시를 받아 고인을 진료한 전공의가 사인을 병사로 기록해 논란이 시작됐다. 고인이 시위 도중 경찰 물대포에 맞아 의식을 잃은 뒤 숨진 만큼 대한의사협회 지침에 따라 '외인사'로 기록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고, 의사협회도 '병사' 진단은 잘못이라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백 교수는 이런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대병원 측은 특별위원회의 조사를 거쳐 "외인사로 적었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고도, 사망진단서 작성은 '주치의의 고유 권한'이라며 수정 조치를 하지 않았다.
서울대병원 측은 15일 사인 변경 방침을 발표하면서 고인의 유족에게 사과했다. 병원 측이 뒤늦게나마 사인을 수정한 데 대해 유족 측은 "지금이라도 고쳐져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도 성명을 통해 "만시지탄"이지만 긍정적이라고 했다. 반면 한국당은 '유감'을 표시했다. 사실 병원 측이 갑자기 입장을 바꾼 것에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김연수 서울대 진료부원장이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도 '정권이 바뀐 영향으로 사망진단서도 바꾼 것이냐'는 취지의 질문이 이어졌다. 백선하 교수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백 씨 사망사건은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았다. 민주당이 정한 '촛불개혁 10대 과제'에 이 사건 재수사가 포함됐고, 새 정부 인수위원회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도 5월 말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서울대병원은 7월부터 감사원의 실지감사를 받을 예정이었다. 병원 측은 "어떤 외부압력도 없었다"며 외압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유족 측이 지난 1월 사망진단서 수정 및 위자료 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을 계기로 병원윤리위원회를 열어 다양한 대책을 검토한 끝에 내린 결론이라는 것이 병원 측 해명이다. 하지만 백 씨를 진료하고 사인을 진단하면서 서울대병원 측이 보인 어정쩡한 태도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가중앙병원이라는 위상과 신뢰성에 큰 흠집을 남겼다. 당장 이 병원 노동조합은 이번 사태의 책임자로 서창석 병원장과 백선하 교수를 지목하고 파면을 촉구했다. 서 원장 등은 지난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된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병원 측은 일련의 사태에 대해 누군가는 책임져야 한다는 여론을 경청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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