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보경 기자 = 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지구촌의 재앙을 막자는 약속인 파리 기후변화협약, 냉전의 종식을 알리는 쿠바와의 반세기 냉전 청산, 의료 후진국 미국이 보편의료의 길로 가는 단추를 끼우는 오바마케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폐기하거나 무력화를 시도하고 있는 전임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국내외 정책 유산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오바마 전 대통령이 쿠바와 체결한 국교정상화에 제동을 걸면서 오바마 유산 지우기가 아직 '진행형'이라는 점을 확인했다.
미국 유력 매체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보건·무역·환경·이민 등 정책 전반에 걸쳐 오바마의 정책을 청산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새 정책 상당수가 전임 정권의 업적을 지운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먼저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가 시작되자마자 오바마가 자신의 최대 업적으로 꼽았던 현행 건강보험법(오바마케어·ACA)의 폐기 절차에 돌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 국민의 건강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오바마케어가 '재난'이라고 비난하며 대선 기간 때부터 폐기를 공언했다.
그는 공언대로 지난 1월 20일 취임과 동시에 모든 연방 기관이 오바마케어에 따른 불필요한 경제 및 규제 부담을 최소화하도록 하는 오바마케어 관련 행정명령에 제일 먼저 서명했다.
또 지난 4일 공화당과 함께 오바마케어를 대체하는 건강보험개혁법인 '트럼프케어'(AHCA)의 하원 통과를 이뤄냈다.
하지만 트럼프케어는 상원이 전면 재개정을 예고하고 있어 입법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산업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자유무역을 지지했던 오바마 행정부의 통상정책들도 손질에 나섰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오바마가 중국의 패권전략을 견제하기 위해 '아시아 회귀' 정책의 하나로 공을 들였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한 지 사흘 만에 TPP 탈퇴를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오바마의 구상대로 TPP가 발효됐다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40%를 차지하는 미국 주도의 거대 경제권이 탄생할 수 있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발효만을 앞두고 있었던 TPP에 찬물을 끼얹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오바마 지우기' 작업이 가장 확연하게 드러난 것은 파리기후변화협정의 탈퇴다.
지난 2015년 195개국의 합의로 발효한 파리협정은 2020년 이후 새로운 기후변화체제를 수립하기 위한 전 지구적인 합의로, 오바마 대통령은 세계 2위 탄소 배출국의 수장으로서 협정 성사를 주도했고, 지난해 9월 미국의 비준을 이끌었다.
하지만 기후변화가 중국이 만들어낸 '사기'라고 주장해온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일 결국 일방적으로 파리협정의 탈퇴를 선언해 국제사회의 공분을 샀다.
트럼프 대통령의 반(反) 오바마 행보는 이슬람권과의 관계와 이민 분야에서도 계속된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지난 2009년 이집트 카이로를 방문해 역사적인 '대(對) 이슬람권 화해 연설'을 하는 등 이슬람 국가들과 원만한 관계를 도모했다.
대표적인 것이 이란 핵협상으로, 오바마 대통령은 이란이 핵개발을 중단할 수 있도록 경제재재를 풀어 이란이 개혁개방정책을 취할 수 있도록 추진했다.
하지만 무슬림에 대해 유독 적대적 태도를 보여온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때부터 이란 핵협상이 '최악의 협상'이라고 평가절하하며 폐기를 주장했고, 취임 후 첫 중동순방에선 '선과 악의 전쟁'을 운운하며 이란을 악의 편으로 몰아붙였다.
이민 정책도 트럼프와 오바마 행정부의 차이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분야 중 하나다.
케냐 출신 아버지를 둔 오바마는 불법체류 청소년의 추방을 유예하는 등 이민 문호를 확대하는 정책을 펴왔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 반(反)이민행정명령을 도입하고, 지난 15일 시민권·영주권을 소지한 자녀를 둔 불법체류 부모들의 추방을 유예하도록 한 오바마 행정부의 이민 개혁안을 공식 폐기하는 등 이에 반대되는 행보를 보였다
'오바마 지우기'는 트럼프가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했던 역사적인 쿠바와의 관계 정상화를 대폭 후퇴시키면서 절정을 맞았다는 해석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6일 미국인들의 쿠바 여행 제한을 강화하고, 쿠바 군부와 거래하는 미국 기업의 거래를 단속하는 조치들을 발표하며 미국과 쿠바와의 국교정상화 협상을 백지화했다.
오바마가 지난 2015년 쿠바 카스트로 형제와 역사적 만남을 갖고, 54년 만에 국교 정성화를 선언했지만 이로부터 2년이 되지 않아 트럼프가 이를 완전히 뒤집은 것이다.
미국 뉴욕타임스 등 주요 외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쿠바의 인권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국교정상화를 추진했던 오바마의 업적을 지우려고 공을 들이고 있다"며 "그는 미국이 냉전시대의 사고를 돌아가기를 요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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