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서 G20정상회의·기후변화·아프리카·테러리즘 등 주제로 환담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프란치스코 교황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 파리기후 협정 준수와 나라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장벽 해체를 위해 노력해줄 것을 당부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7일 바티칸 사도궁에 위치한 교황 개인 서재에서 메르켈 총리의 예방을 받고 기후변화, 아프리카 문제, 테러리즘 등을 주제로 폭넓게 의견을 교환했다.
메르켈 총리는 내달 7∼8일 독일 북부 함부르크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교황에게 회의 의제를 설명한다는 명분으로 이날 교황청을 찾았다.
서방의 정신적 지도자인 교황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자국 우선주의를 강조하고 있는 미국을 대신해 국제 사회에서 실질적 지도자 역할을 하고 있는 독일 총리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관심이 모아진 이날 회동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이례적으로 긴 40분 동안 이어졌다.
교황청은 두 사람의 회동이 끝난 뒤 "오늘 면담은 가난과 기아, 테러리즘, 기후변화에 대한 국제 사회의 대처에 초점이 맞춰졌다"고 발표했다.
메르켈 총리는 교황과의 회동을 마친 뒤 "이 세계가 각국이 함께 협력하고자 하는 곳이자 장벽을 쌓는 것이 아닌 해체하고자 하는 곳임을 전제로 한 G20 정상회의 의제에 대해 브리핑했다"고 밝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멕시코 장벽 건설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며 각국 정부에 "장벽이 아닌 다리를 건설하라"고 끊임없이 촉구해왔다.
메르켈 총리는 이어 함부르크 G20 정상회의의 핵심 주제가 기아와 내전에 신음하고 있는 아프리카 개발 문제가 될 것임을 교황에게 알렸고, 교황은 이를 환영했다고 덧붙였다.
메르켈 총리는 또 프란치스코 교황이 미국의 최근 탈퇴에도 불구하고 2015년 타결된 파리기후협약을 포함해 국제 협정을 지키기 위해 계속 노력해줄 것을 자신에게 당부했다고 전했다.
그는 "교황은 지구촌 전체를 위해 현재의 행보를 이어가라고 격려해줬다"며 "모든 면에서 고무적인 대화였다"고 이날 만남을 자평했다.
교황은 지난 달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바티칸을 찾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날 메르켈 총리에게 파리협약 타결 전인 2015년 교황청이 발행한 기후변화와 환경보호에 관한 회칙인 '찬미 받으소서'(Laudato Si)를 선물했다.
이 회칙은 선진국들이 빈국을 착취해 신의 피조물인 이 세상을 쓰레기 더미로 변모시키고 있다며 왜곡된 개발 모델을 바꾸기 위한 국제 협정의 필요성을 강조해온 교황의 철학을 담고 있다.
교황은 이와 함께 메르켈 총리에게 평화를 상징하는 올리브 가지로 만든 메달도 선사했다. 최근 교황의 고국인 아르헨티나를 다녀온 메르켈 총리는 교황에게 아르헨티나의 특산품인 달콤한 스프레드 제품을 선물했다.
교황은 아울러 이 자리에서 전날 87세로 세상을 뜬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의 서거에도 애도를 표현했다.
교황은 콜 전 총리를 "독일과 유럽의 통합을 위해 열성적으로 노력한 위대한 정치가이자 투철한 유럽주의자"라고 지칭하며 "신께서 그에게 천국에서의 영원한 기쁨과 영생이라는 선물을 주실 것을 기도한다"고 말했다.
한편, 가톨릭에서 갈라져 나간 루터교 목사의 딸인 메르켈 총리가 프란치스코 교황과 개별 면담을 한 것은 2013년 즉위 이래 이번이 4번째다.
독일 내에서는 교황이 선거를 앞둔 정치인을 개별적으로 만나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깨고 메르켈 총리의 접견을 허가한 것을 못마땅해 하는 시각도 존재한다고 독일 DPA통신은 보도했다. 메르켈 총리는 오는 9월24일로 예정된 총선을 통해 4연임에 도전한다.
ykhyun14@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