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 속 관정파기, 하천용수 끌어올리기…2차 못자리 준비
(서산·홍성=연합뉴스) 조성민 한종구 기자 = 휴일인 18일 오전 8시. 충남 홍성군 서부면 천수만 A지구 간척지에는 휴일 아침이라는 게 무색하게 농민 20여명이 분주히 모판을 나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반대편 논에서는 오와 열을 맞춰 깔아 놓은 모판에 농민 네 명이 달라붙어 흰색 비닐을 덮고 있다. 못자리를 만드는 작업이다.
이 지역 모내기는 지난달 이미 끝났다.
하지만 가뭄으로 모가 말라죽어 다시 모내기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간척지 특성상 논바닥에서 염분이 올라오면서 이 지역 염분 농도는 영농 한계치(2천800ppm)를 훨씬 초과해 4천ppm이 넘는다.
갓 심은 모가 말라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새롭게 못자리를 만들어도 앞으로 비가 오지 않으면 헛수고다.
모판을 옮기던 농민 최모(68)씨는 "비가 올 것으로 기대하며 못자리를 만든다"며 "늦어도 다음 달 초까지 비가 오지 않으면 어렵게 만든 못자리도 쓸모없게 돼 올해 농사를 모두 망치게 된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옆 논에서는 트랙터로 논을 갈아엎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2차 모내기를 위해 말라 죽은 모를 갈아엎고 논을 평평하게 고르는 것이다.
트랙터를 몰던 김모(65)씨는 "심은 모를 갈아엎는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며 "내 평생 농사를 지으며 모내기를 두 번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고 말했다.
농민들은 역대 최악 가뭄으로 제한급수를 한 2015년보다 상황이 더 나쁘다고 입을 모았다.
당시에는 적어도 모내기를 두 번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은 없었다.
가뭄이 지속하자 농민은 물론 행정기관, 군부대, 경찰에 민간 기업까지 나서서 휴일도 잊은 채 물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충남 서북부 지역에서는 관정파기 작업이 한창이다.
'둥글게 판 우물'이라는 뜻의 관정은 지하수를 이용하기 위한 수리시설이다.
서산시 고북면 한 저수지 인근에 옹기종기 모인 주민 7∼8명은 '펑'하는 소리와 함께 굴착 장비 사이로 물이 솟구치자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전날 500여m 떨어진 소하천 부근을 굴착하다가 적정수준 지하수가 나오지 않아 한 차례 장소를 옮겼기에 기쁨은 배가 됐다.
수량조사 결과 하루 150t가량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돼 전기시설 등을 갖추면 인근 농경지에 물을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주민 정옥환씨는 "이곳은 저수지나 지하수가 완전히 말라버려 간월호 물을 썼는데 거의 바닷물에 가깝다"며 "물 한 방울이 아쉬워 쓰긴 하지만 어린 모가 누렇게 말라버려 하루빨리 신선한 물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관정개발 현장 관계자는 "작업하는 내내 동네 어르신들이 나와서 지켜봐 휴일도 반납하고 관정개발에 주력하고 있다"며 "충남 서해안 지역을 돌면서 관정을 개발하는데 가는 곳마다 까맣게 그을린 농민 얼굴을 보면 마음이 짠하다"고 말했다.
갈라진 논에 물을 대는 작업도 계속했다.
예산소방서는 소방차로 대술면 송석리와 광시면 장신리 등 4개 마을에 농업용수 100t을 실어 날랐다.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진 논은 소방차에서 물이 쏟아지자 기다렸다는 듯 빠르게 흡수했다.
논에 물이 차기 시작하자 어두웠던 농민 표정은 한층 밝아졌다.
농민 박모(72)씨는 "모가 말라 죽어가는 모습에 가슴이 타들어 가는 심정이었다"며 물을 공급해 준 소방관들에게 거듭 감사 인사를 했다.
충남도는 이달 초부터 가뭄 심화 단계를 '주의'에서 '경계'로 격상하고, 안희정 충남지사를 본부장으로 하는 가뭄 재난안전대책본부를 가동하고 있다.
총괄상황반, 농업 분야 대책반, 상수도 분야 대책반, 공업 분야 대책반 등으로 구성한 대책본부는 분야별 피해 상황을 분석해 인력·장비 등을 적기에 지원하는 등 종합 컨트롤 타워로서 가뭄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고심하고 있다.
충남도 관계자는 "하늘만 원망하며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며 "관정개발, 저수지 준설, 수중 모터 가동, 긴급 못자리 지원 등 가뭄을 극복하기 위한 모든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jk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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