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연합뉴스) 이창호 기자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았건만(道不遠人) 사람이 도를 멀리하고(人遠道) 산은 속세를 떠나지 않았건만(山非離俗) 속세가 산을 떠난 것이다(俗離山)”
이 시는 신라 헌강왕 때 속리산 묘덕암을 찾은 고운 최치원의 글이다. 고운이 읊은 그대로 속리산(俗離山ㆍ1,058m)은 그 옛날 열두 구비 말티고개를 넘어야만 닿을 수 있는 첩첩산중이었다. 이름 또한 속세를 떠난다는 뜻이니, 속리산 깊은 곳에 발을 들여놓으면 시의 울림이 더욱 절실하게 와닿는다.
충북 보은군과 괴산군, 경북 상주시의 경계에 있는 속리산은 최고봉인 천왕봉을 중심으로 비로봉, 길상봉, 문수봉 등 9개의 봉우리가 있다 하여 ‘구봉산’(九峰山)으로도 불린다. ‘고려사지리지’나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신라 때에는 ‘속리악’(俗離岳)이라고 일컫고, 중사(中祀)가 행해졌다”라고 기록돼 있다.
예로부터 속세와 단절이 가능한 명산으로 꼽혀온 속리산은 천왕봉 코스보다는 천년고찰 법주사 쪽에서 올라가는 문장대 코스가 가장 인기 있는 등산로다. 문장대는 본래는 구름 속에 잠긴다고 운장대(雲藏臺)였으나 세조가 이곳에서 시를 읊었다 하여 문장대(文藏臺)로 바뀌었다고 전해진다.
속리산에는 문장대뿐만 아니라 법주사로 행차할 때 가마가 걸려 움직이지 못하자 가지를 들어 올렸다는 정이품송(천연기념물 제103호), 목욕하며 피부병을 고쳤다는 목욕소(沐浴沼), 바위 밑에 앉아 생각에 잠겼던 눈썹바위, 속리산의 배꼽에 해당하는 복천암에 이르기까지 조선의 7대 임금인 세조의 흔적이 녹아 있다.
계유정난 때 어린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즉위한 세조는 내내 죄책감에 시달렸고 만년에는 부스럼(종기)으로 고생했다. 지난해 9월 개통한 세조길은 세조가 요양 차 스승인 신미대사가 머물던 복천암으로 순행 왔던 길로, 천년고찰 법주사에서 세심정 간 2.4㎞ 구간이다.
여기에 나란히 이어지는 ‘오리숲’을 더하면 운치 있는 숲길이 십리를 훌쩍 넘는다. 속리산 관광단지에서부터 법주사 입구까지 걸쳐 있는 오리숲은 그 거리가 대략 2㎞(5리)라 붙은 이름으로, 법주사를 찾는 승속들이 걸었던 길이다.
윤태현 속리산국립공원 자연환경해설사는 “세조길과 오리숲은 서너 시간이면 충분한 코스로 여름철에는 이른 아침이나 해가 뉘엿뉘엿 기울기 시작하는 오후 늦게 거닐어도 좋다”며 “숲에서 닫혔던 오감(五感)을 곤두세우면 평소에 듣지 못하고 알지 못하던 자연의 소리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 맑은 계곡에 솔향 가득한 산책로
속리산 관광단지 내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오리숲 산책에 나선다. 예로부터 속리산 입구인 길 양옆으로 수령이 많은 소나무와 떡갈나무, 참나무와 서어나무가 아름드리 터널을 이룬다. 숲이 길게 뻗었고, 솔향이 수시로 코를 자극한다. 솔향이 가슴을 탁 트이게 하고 마음과 몸이 한결 편안해진다. 시간을 다툴 일이 없는 마음은 느릿한 걸음으로 이어지고, 호젓함은 속세를 떠나온 듯하다. 날다람쥐, 멧돼지, 딱따구리, 물까치 등이 함께 사는 오리숲에는 황톳길 체험장과 조각공원이 있다.
보은 출생의 황귀선 시인의 ‘세월이 지나간 보은의 찬가’ 시비와 ‘환상’ ‘무제’ ‘동심의 고향’ 등의 조각 작품을 감상하며 천천히 걷다 보니 탐방지원센터와 법주사 매표소에 이른다. 세조길 걷기나 속리산 등산을 하려면 법주사 입장료(성인 4천원)를 내야 한다. 이곳에서 몇 걸음을 더 옮기면 오리숲 구간인 자연관찰로에 들어선다. 자연관찰로 안내판에는 ‘느낌으로 - 오감을 통해 자연을 느끼는 구간, 생각으로 - 자연현상의 원리를 알아보는 구간, 마음으로- 자연의 소중함을 알아보는 구간’이라고 적혀 있다.‘속리산에서 자생하는 식물을 볼 수 있는 숲길’‘나무에서 소리가 나요’‘주변의 향기를 느껴봐요’ ‘죽은 나무는 왜 필요할까요’‘ 산수유와 생강나무 비교해봐요’라는 팻말을 따라 걸으며 자연과 교감한다.
이어 현판에 ‘호서제일가람’(湖西第一伽覽)이라 쓰여 있는 일주문을 지나면 법주사 경내로 들어가는 길과 세조길 입구로 갈라진다. 법주사 구경을 잠시 미루고, 기존 탐방길 오른쪽으로 낸 세조길로 접어들었다. 윤태현 자연환경해설사는 “세심정까지 가는 기존 시멘트포장도로는 암자와 휴게소를 드나드는 차량과 마주치고 사고도 빈번해 속리산 등산객이나 탐방객들의 민원이 발생했다”며 “포장도로의 번잡함에서 벗어난 세조길은 숲도 울창하고 경사도 완만해 어린 자녀와 함께 걷기 좋은 숲길”이라고 말한다.
◇ 햇살 쏟아지는 숲길, 로맨틱한 분위기의 극치
오랫동안 사람 왕래가 없던 탓인지 숲은 깊지만 평탄한 산책로가 이어진다. 햇살이 나뭇잎을 뚫고 쏟아지는 숲길의 운치란 로맨틱한 분위기의 극치이다. 국립공원 최초로 목재를 재활용한 목재 블록 길을 지나면 세조가 법주사로 행차했을 때 스님들과 담소를 나누다 자신의 잘못을 참회했던 절터에 닿는다.
임진왜란 당시 불에 타 버려 건물터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권력무상, 인생무상을 느끼고 올라서면 생긴 모습이 마치 사람의 속눈썹을 닮은 눈썹바위가 있다. 속리산을 찾은 사람들이 비바람과 한낮의 더위를 피하던 장소로 세조가 바위 그늘 아래 앉아 생각에 잠겼던 자리다. 세조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눈썹바위 너머로 물을 가득 머금은 법주사 수원지가 눈에 들어온다. 1급수 맑은계곡 물로 물속은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투명하다. 1997년 치수사업으로 만들어진 수원지는 2014년까지 상수도 취수원으로 사용됐고, 지금은 멸종위기종 1급인 수달을 비롯해 삵 등이 관찰되고 묵납자루, 돌고기, 참갈겨니, 남생이 등 수중·수변 동물의 보금자리다. 이른 아침이면 안개가 수면에서 연기처럼 피어나 주변의 산자락과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나무덱은 수원지 위를 지그재그로 넘나들고 1급수의 맑은 물은 탐방객의 발걸음을 더디게 한다.
탐방객들은 수정봉 그림자가 드리워진 수원지 주변의 의자에 앉아 호흡을 가다듬는다. 전설에 따르면 먼 옛날 당나라 태종이 세수하려는데 대야에 커다란 거북의 그림자가 보였다고 한다. 이에 놀란 태종이 한반도의 큰 거북으로 인해 중국에 재물과 인물이 모이지 않고 기운이 한반도로 흘러가고 있다고 하여 그 거북을 찾다가 속리산 수정봉에서 거북 바위를 발견하여 목을 자르고, 등 위에는 탑을 세워 그 기운을 누르려 하였다고 한다. 후에 이를 알게 된 사람들이 떨어져 나간 목을 주워 붙이고 등 위에 세웠던 돌탑을 없애버렸다는 것이다.
◇ 나뭇가지 사이로 이따금 드러나는 파란 하늘
짙은 녹음이 하늘까지 가려진 숲길 한쪽에는 고려 충숙왕 때의 김구용이 속리산에서 마음을 수양하면서 쓴 ‘속리사’라는 시가 적혀 있다. “달마암 가에 등불 하나 밝혀두고/ 문열고 향사루며 마음 다시 맑히네/ 홀로 깊은 밤 앉아 잠 못 이루자니/ 창 앞 물소리 솔바람과 함께 들리네”
수원지를 지나 숲길을 스치면 시멘트포장도로와 잠시 만난다. ‘법주사 1.3㎞, 세심정 1.4㎞’라는 이정표를 지나 다리를 건너면 달천 계곡 오른쪽으로 길이 이어진다. 얼마 걷지 않아 조릿대와 쪽동백이 반기고 짙은 녹음이 온몸을 휘감아 돈다. 걷는 여행의 매력은 무엇보다 소리를 만나는 것에 있다. 길옆으로 천왕봉에서 발원한 계곡물이 따라오고 바위 사이로 흐르는 경쾌한 물소리는 한낮 더위를 식히는 청량제다. 막힌 속까지 뻥 뚫리게 한다.
윤태현 자연환경해설사는 “숲이 사라지면 수많은 골짜기가 비가 올 때만 물줄기가 생겼다가 사라지는 건천이 돼 버린다”며 “세조길 내 피톤치드 발생량을 측정한 결과, ‘치유의 숲 평가’에서 최고 점수인 3.0ppt/일’로 조사되었고, 음이온은 ‘2000개/㎤/일’을 초과한 ‘3290개/㎤/일’로 조사됐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런지 빽빽한 숲을 걷다 보면 잠시 세속을 벗어난 느낌마저 가득하다. 이따금 촘촘하게 얽힌 나뭇가지 사이로 파란 하늘이 드러난다. 길은 적당한 크기의 연못인 목욕소(沐浴沼)로 연결된다. 약사여래의 명을 받은 월광태자가 꿈에 나타나 점지해 준 이곳에서 목욕한 뒤 세조의 피부병이 깨끗이 나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문득 세조는 이 길을 걸었을까 아니면 가마를 타고 갔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이곳부터 기존 탐방로인 계곡을 따라 300여m 오르면 세심정이다. 이곳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오르면 복천암과 문장대이고, 오른쪽으로 오르면 천왕봉과 신선대로 연결된다. 세 번 올라야 극락에 간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문장대는 1시간 30분 정도면 오를 수 있고, 국립공원관리공단은 복천암까지 500m 구간에 세조길을 연장한다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발길을 돌려 오던 길을 되돌아 ‘속세를 떠난 산에 법이 머무는 사찰’ 법주사(法住寺)로 내려왔다. 신라 진흥왕 때 창건한 법주사는 신라 시대 석등의 백미인 쌍사자석등(국보 제5호), 현존하는 유일한 목탑인 팔상전(국보 제55호), 돌로 만든 연못인 석연지(石蓮池ㆍ국보 제64호) 등 국보 3점을 보유하고 있는 명찰이다. 높이 약 25m의 미륵대불과 마애여래의상(보물 제216호), 대웅보전(보물 제915호) 등도 볼만하다.
속리산의 화강암 연봉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경내에는 소나무ㆍ당단풍나무ㆍ배롱나무ㆍ잣나무ㆍ대추나무ㆍ주목ㆍ야광나무ㆍ이팝나무ㆍ백송ㆍ모감주나무ㆍ은행나무ㆍ회양목ㆍ전나무 등이 울창하다. 법주사 경내를 대충 돌아봤는데도 시간이 훌쩍 지난다.
이 여름, 철학자가 아니더라도 사색에 빠지게 하는 속리산 세조길을 걸어보는 것이 어떤지. 그곳은 세속을 떠난 ‘속리’(俗離)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chang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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