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 적은 달 윤달 아닌 9월, 출산은 윤달과 무관
1980년대 부동산 붐 일자 윤달 중시, 불황 땐 무시
(전국종합=연합뉴스) 심규석 기자 = 올해는 윤 5월이 끼어 있는 해다. 양력으로 따지면 이달 24일부터 다음 달 22일까지 29일간이다.
웨딩업계는 울상이다. 윤달에 결혼하면 조상의 음덕을 받을 수 없다는 속설 탓에 이때를 기피하는 예비부부가 많아서다.
출산도 마찬가지다. 윤달을 피해 출산을 앞당기거나 늦춰야 한다는 시댁과 친정 어르신들의 성화에 신혼부부들은 '택일'에 신경을 써야 한다.
이렇듯 윤달을 따지는 오랜 습속 때문에 결혼이나 출산이 급격히 줄고, '손 없는 달'로 여겨 이사 물량은 늘어날 것 같지만, 살펴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미신이나 습속에 얽매이지 않는 분위기가 확산하면서 더욱 그렇다.
통계만 놓고 보면 계절적 요인, 경제적 요인 때문에 영향을 받는 것이지 윤달이라서 이사 날짜를 잡거나, 출산과 결혼을 꺼리는 것은 옛말이 됐다.
◇ 혼인 가장 적은 달 9월…결혼 택일, 윤달과 무관
통계청에 따르면 혼인을 가장 많이 하는 달은 12월이다. 결혼식보다 다소 늦을 수 있는 혼인 신고 날짜가 통계의 기준이 되기 때문일 수 있지만 연중 혼인 신고 건수의 10%를 넘는 달은 1년 중 12월이 유일하다.
반대로 혼인 건수가 가장 적은 때는 가을이 시작되는 9월이다.
2000년부터 작년까지 17년간 9월의 혼인 신고 비율이 7%를 넘은 적은 단 한 차례도 없다. 2000년 9월은 4.8%에 불과했고 가장 높았던 때는 2009년 9월 6.7%였다.
물론 윤달에는 전년도 같은 달과 비교하면 혼인 비율이 소폭 하락했지만, 그 차이는 거의 없는 수준이다.
2006년 9월(윤 7월)의 혼인 비율은 5.8%로, 전년도 같은 달보다 0.2% 포인트 하락했고, 2009년 7월(윤5월)에는 0.6% 포인트 떨어진 7.4%, 2012년 5월(윤3월)에는 0.7% 포인트 하락한 8.4%였다.
결혼을 기피한다는 윤달 효과가 두드러졌던 해는 2014년뿐이다.
그해 11월(윤 9월)의 혼인 건수는 한 해 전체 건수의 7.7%에 그쳐 1년 전보다 1.1% 포인트 하락했다. 건수로 따지면 2013년 11월 2만8천426건에서 2014년 같은 달 2만3천602건으로 16.9%, 4천824건이줄었다.
당시 예비부부들이 윤달을 피해 결혼식을 늦췄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그해 혼인 건수가 가장 적었던 달은 윤달이었던 11월이 아닌 9월이었다. 9월의 혼인 건수는 11월보다 18.1%, 4천276건 적은 1만9천326건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11월 혼인이 감소한 것은 윤달 영향이 아니라 악화된 경제 상황으로 민간 소비가 급격히 위축된 탓이라는 분석이 더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졌다.
어르신 세대에 오랜 습속으로 받아들여졌던 윤달이 결혼 날짜를 잡는데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윤달 출산 피하라고? …"우리 아이 잘만 커요"
주부들이 활동하는 인터넷 카페에는 윤달 출산을 걱정하는 임신부들의 글이 많다. "친정엄마가 윤달 이전에 출산하면 좋겠다고 말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식으로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다.
이에 대해 주부들은 "윤달은 쓸데없는 속설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입을 모은다.
한 주부는 "저희 아이는 2012년 5월 윤달에 태어났지만 예쁨 많이 받으며 무탈하게 잘 크고 있다"고 답했고, 윤달에 태어났다는 또 다른 주부는 "가끔 사주를 보면 모두 좋다고 말하는데 윤달에 얽힌 속설은 미신"이라는 댓글로 안심시켰다.
통계적으로 봐도 윤달이라고 해서 출산율이 낮아지지 않는다. 전년도보다 소폭 늘어난 해가 있는가 하면 또 다른 해에는 전년도와 비슷했다. 물론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소폭 줄어든 해도 있다.
윤달인 2001년 6월(윤 4월)의 출생률(한 해 출산 중 6월이 차지한 비율)은 7.5%로 월 평균치(8.3%)보다는 다소 낮았다. 그러나 윤달이 끼지 않은 전년도보다 오히려 0.2% 포인트 증가했다.
2006년 9월(윤7월)의 출생률은 8.5%로 전년도와 같았고, 그 반대로 2014년 11월(윤9월) 출생률은 7.4%로 1년 전년도보다 0.4% 포인트 감소했다.
윤년이라고 해서 무조건 출산이 줄지 않는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통계 자료다.
인터넷 카페에서 활동하는 한 주부는 "아이들 생일을 양력으로 쇠는 마당에 윤달을 왜 따지느냐. 날을 받아 앞당겨 수술해 출산할 생각 하지 말고 아기가 태어날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게 부모의 도리"라고 말했다.
◇ '윤달 이사' 1980년대 부동산 붐 맞물려 증가
윤달에는 언제, 어디로 이사해도 액운이 따르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윤달이면 평상시보다 50% 이상 매출이 오른다는 게 이사 업체 관계자들의 얘기다.
윤달 이사를 선호하는 주민도 있겠지만, 행정자치부 전출입 통계 수치로 보면 이런 얘기는 현실과 맞지 않는 속설에 불과하다.
1970년대에도 윤달에 대한 속설이 있었겠지만 그 시기의 윤달에는 전입자 수가 전년도 같은 달보다 모두 감소했다. '윤달 이사'를 꼭 선호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사 시즌이었던 1976년 10월(윤 8월) 전국 관공서에 등록된 전입자 수는 51만5천548명으로 전년도 같은 달 92만1천488명보다 44%, 40만5천940명 감소했다. 늘어야 할 때 오히려 급감한 셈이다.
'손 없는 날'이라는 이유로 윤달에 이사하는 주민이 늘기 시작한 때는 1980년대 중반부터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유치하면서 부동산 개발 붐이 일었던 때인데, 이즈음부터 윤달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
윤달이었던 1984년 12월(윤 10월)의 전입자 비율은 8.5%로 전년도 같은 달보다 0.4% 포인트 상승했고, IMF가 터지기 직전인 1995년 10월(윤 8월)에는 1년 전보다 0.9% 포인트 상승한 9.7%에 달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경제 불황의 여파 탓인지 윤달 전입자 규모가 소폭의 등락을 되풀이했다.
2001년 6월(윤 4월)의 전입자 비율이 전년보다 0.1% 포인트 상승한 8.1%를 기록했고, 2009년 7월(윤 5월)에는 1년 전보다 0.1% 포인트 증가한 7.9%로 집계됐다. 그러나 2014년 11월(윤 9월)에는 8%를 기록, 전년도보다 0.4% 포인트 하락했다.
통계를 분석해보면 경기가 좋을 때는 속설이더라도 윤달을 따지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윤달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박한얼 한국천문연구원 박사는 "윤달은 양력과 음력의 날짜 차이를 보정하려고 넣는 기간일 뿐 결혼, 출산, 이사 등을 좌우할 요인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ks@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