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만 국왕, 중동 패권 경쟁·갈등 속 친정 체제 강화
국방·석유 쥔 '실세왕자' MBS…친미·반이란 성향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사우디아라비아의 살만 국왕이 21일(현지시간) 왕위계승 서열 1위를 친아들인 모하마드 빈살만(31) 왕자로 전격으로 교체하면서 사우디 왕가의 후계구도가 급속히 재편됐다.
그간 '석유 왕국' 사우디의 왕좌를 둘러싸고 과연 살만 국왕의 조카이자 왕위 계승 서열 1순위인 모하마드 빈나예프 왕자가 순조롭게 왕위를 물려받을 수 있을 지에 대해 예측이 분분했다.
후계 2순위이자 살만 국왕의 친아들 모하마드 빈살만 왕자의 권세가 공식 서열을 역전할 정도로 강력했던 탓이다.
결과적으로 전세계가 주목했던 사우디 알사우드 왕가 내 '왕좌의 게임'의 승자는 서열을 역전한 모하마드 빈살만 왕자가 된 셈이다.
언론이 붙인 모하마드 빈살만 왕자의 별칭은 영문 표기 앞글자를 딴 'MBS'다. 그만큼 과거 사우디의 왕세자들과 달리 인지도가 높을 뿐 아니라 영향력이 크다는 방증이다.
국방장관을 겸직하는 그는 올해 31세로 세계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국방장관으로 알려졌다.
MBS는 살만 국왕이 셋째 부인에게서 낳은 여섯째 아들이다.
장남은 아니지만 그는 살만 국왕이 수도 리야드 시장으로 재직(1968∼2011년)했을 때 두각을 나타냈다.
MBS는 매주 시민을 직접 만나 애로사항과 민원을 해결하는 일을 맡아 20대임에도 뛰어난 업무 수행력을 보이면서 아버지의 신임을 얻었다는 후문이다.
2015년 1월 살만 국왕이 즉위하자 젊은 나이임에도 형들을 제치고 사우디 내각의 요직 중 요직인 국방장관에 임명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였다.
MBS는 당시만해도 정확한 나이 조차 파악되지 않을 만큼 무명이었다.
같은 달 그는 국왕 직속 11개 위원회를 통합한 경제·사회 정책을 관장하는 경제개발위원회의 위원장에도 임명됐다. 살만 국왕은 이 위원회가 세계 최대의 석유회사이자 사우디의 '심장'이나 다름없는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경영권을 관장하도록 했다.
사우디 왕가를 지탱하는 양대 축인 군과 석유에 대한 사실상 전권을 MBS에게 물려준 셈이다.
아람코의 기업공개, 여성의 권리 신장, 일자리 창출, 석유 의존도를 낮추고 비(非)석유 분야를 성장시키는 산업구조 개조 등 사우디의 개혁 청사진인 '사우디 2030'을 주도하는 이도 MBS다.
그는 국방장관에 취임한 지 두 달만인 2015년 3월 예멘을 공습하는 작전을 지휘했다.
예상보다 예멘 내전이 장기화하면서 MBS의 오판이라는 비난 여론도 높지만 살만 국왕은 그를 여전히 신뢰한다.
살만 국왕은 외무부, 석유부, 주미대사 등 정부 요직을 MBS의 측근으로 과감히 세대 교체해 차기 왕권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틀을 만들고 있다.
MBS는 친미 성향이자, 대(對)이란 강경파로 알려진 인물이다.
특히 이란에 적대적인 도널드 트럼프 정부와 밀착해 핵합의로 부상한 이란과 벌이는 패권 경쟁의 선봉장이라고 할 수 있다.
젊은 나이에 실권을 쥔 그에 대한 평가는 '개혁가' 또는 '독불장군'으로 크게 나뉜다.
2015년 말 영국 언론엔 MBS를 폐위하고 다른 왕자를 왕위계승자로 옹립해야 한다는 내용의 사우디 왕가 내부 문건이 공개됐다.
30대 초반의 MBS에 대한 권력 집중에 권부에서 밀려난 사우디 알사우드 왕족 일각의 불만과 견제도 언제나 잠재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정황을 종합하면 MBS의 제1왕위계승자 책봉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라고도 할 수 있다.
82세의 고령인 살만 국왕이 서거할 경우 그는 30대에 중동의 대국 사우디의 권좌에 오르게 된다.
사우디 왕위가 종신제인 만큼 별다른 급변사태가 없다면 40년 이상 MBS의 시대가 될 전망이다. 동시에 사우디 초대 국왕 압둘아지즈 사후 1953년 시작된 형제 상속으로 이어진 역대 6명(살만 국왕 포함)의 노쇠한 '아들 세대'가 끝나고 '손자 세대'의 첫 국왕이 된다.
살만 국왕은 시리아와 예멘 내전, 카타르 단교 사태 등 중동 현안과 이와 엮인 이란과 패권 경쟁이 날로 첨예해지고 유가 하락으로 사우디 국내 상황도 불안해지자 전격적으로 친아들 중심으로 후계구도를 재편한 것으로 보인다.
1932년 창건된 사우디 알사우드 왕가는 대체로 안정적으로 유지됐지만 사우드(재위 1953∼1964년) 국왕의 강제 폐위, 파이잘(1964∼1975년 재위) 국왕의 피살에서 보듯 방대한 왕가 내부의 권력 암투가 불시에 되살아 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는 탓이다.
한편, 이번에 제1왕위계승자와 내무장관에서 모두 물러난 MBS의 사촌형 모하마드 빈나예프 왕자는 선친과 마찬가지로 '비운의 왕세자'가 됐다.
그의 선친 나예프 빈압둘아지즈 왕자는 2011년 제1왕위계승자로 책봉됐지만 1년만에 병사했다.
나예프 빈압둘아지즈 왕자가 죽지 않고 살만 국왕 대신 왕위를 이었다면 MBS는 6천명 정도로 추산되는 사우디 왕가의 왕자와 공주 중 한 명에 불과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hskan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