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쉬어야겠다"…사우디 '비운의 왕세자' 쓸쓸한 퇴장

입력 2017-06-23 13:22  

"이제 쉬어야겠다"…사우디 '비운의 왕세자' 쓸쓸한 퇴장

테러조직 암살기도 4번 겪은 사우디 대테러 체계 설계자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이제 쉬어야 겠다"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이 21일(현지시간) 책봉한 새로운 제1왕위계승자(왕세자) 모하마드 빈살만 왕자에게 모하마드 빈나예프 왕자(58)는 어깨를 두드리면서 속삭였다.

"알라의 가호가 있을 것"이라는 빈나예프 왕자의 격려에 그를 대신해 새로 왕세자가 된 빈살만 왕자는 "당신의 조언이 앞으로도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렇지만 이제 사우디 왕실과 내각에 빈나예프 왕자의 자리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빈나예프 왕자는 자신의 아버지를 이어 맡았던 내무장관직에서도 물러났다.

2년 동안 '석유 왕국' 사우디의 차기 왕위 계승 1순위였던 빈나예프 왕자는 이렇게 '왕좌의 게임'에서 퇴장했다.

살만 국왕은 그의 작은아버지다. 그를 제치고 새 왕세자가 된 살만 국왕의 친아들 빈살만 왕자는 26살이나 어린 사촌동생이다.

빈나예프 왕자의 친부 나예프 빈압둘아지즈 왕자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한 때 사우디 왕가의 왕위 계승 1순위였다.

아버지 빈압둘아지즈 왕자는 1975년부터 사망한 2012년까지 사우디의 내무장관을 맡았다. 2011년 드디어 왕세제로 책봉돼 즉위를 눈앞에 두는가 했지만 이듬해 심장 마비로 사망하고 말았다.

2대가 모두 왕위 계승 1순위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셈이다.

그 바람에 당시 제2왕위계승자(부왕세제)였던 살만 현 국왕이 왕위를 이어받을 수 있었다.

빈압둘아지즈 왕자가 병사하지 않고 2015년 서거한 압둘라 국왕의 뒤를 이었다면 아들 빈나예프 왕자는 지금쯤 최고 실세로 활약하고 있을 터다.

빈나예프 왕자는 2015년 국방장관에 전격적으로 기용되기 전까지 무명이었던 빈살만 왕자와 달리 공직에 입문한 1999년부터 내무부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다.

서방에서도 그의 인지도는 상당히 높았다. 특히 대테러 정책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면서 서방 정부와도 긴밀한 관계를 이어왔다.

20대엔 미국에 유학해 연방수사국(FBI) 안보 교육과정, 미국 경찰 스코틀랜드 야드에서 대테러 전문 교육 과정도 밟았다.

빈나예프는 사우디의 대테러 체계 설계자라고 보는 시각이 있을 정도로 이 분야에 매우 전문적인 경험과 식견을 보유한 인물이기도 하다.

2010년 미국 시카고 기도된 화물기 폭파 테러가 불발된 것도 당시 사우디 내무부 안보담당 차관보였던 빈나예프 왕자가 기밀 정보를 전달해준 덕이었다. 2003년에도 알카에다의 미국 본토 내 테러를 빈나예프 왕자의 도움으로 막을 수 있었다.

테레에 대해 대체로 매우 강경한 정책을 선호했는데 그는 아버지 빈압둘아지즈 왕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테러조직이 4차례나 그를 암살하려고 시도했다. 다행히 2009년 예멘 알카에다의 자살폭탄 암살 이외엔 부상하지 않았다.

미국 AP통신은 그를 '대(對)테러의 차르'라고 칭했고, 미국 정가에서 부르는 별명은 '대테러의 왕자'였다.

이런 혁혁한 공로와 화력한 이력, 미국과의 인맥도 왕가의 냉정한 권력 경쟁을 극복하지 못했다.

빈나예프 왕자는 사촌 동생 빈살만 왕자가 왕세자로 책봉되자마자 왕가의 일원으로서 그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6천명으로 추정되는 사우디 알사우드 왕가의 왕자·공주 가운데 평범한 한 명으로 돌아갔다.






hska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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