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셴룽 총리 남동생 "형수가 총리실 협조속 아버지 유물 절도"
(방콕=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싱가포르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의 유산을 둘러싸고 그의 큰 아들인 리셴룽(李顯龍·65) 현 총리와 형제들 간의 갈등이 좀체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리 총리가 아버지의 유언장 작성 과정에 제수(弟嫂)의 개입 및 조작 의혹을 제기하자, 동생인 리셴양(李顯陽·60) 싱가포르 민간항공국 이사회 의장이 형수이자 국부펀드 테마섹의 최고경영자인 호칭(何晶·64) 여사의 문서 절도 의혹으로 맞불을 놓은 것이다.
23일 더 스트레이츠타임스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리셴양 의장은 전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호칭이 지난 2015년 2월 6일에 아버지 리콴유의 문서 다수를 임의로 가져갔다"며 "병세가 악화한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한 다음 날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당시 호칭은 총리실의 협조 아래 이런 일을 저질렀다. 아주 심각한 문제"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그 증거로 국가문화유산위원회(NHB)가 최근 공개한 리콴유 유물 목록 사진을 제시했다. 사진에는 이 문서들이 2015년 2월 6일에 NHB에 인계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싱가포르 총리실은 이런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당시 호칭 여사가 남편인 리셴룽 총리의 스페인 방문에 동행했으며 귀국일은 2015년 2월 7일이라는 기록도 제시했다.
또 NHB도 관련 문서들은 2015년 2월 6일이 아니라 리콴유 사후인 4월 6일에 인계됐으며, 최근 공개한 목록에서 인수일이 2월 6일로 기록된 것은 단순한 착오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리셴양은 이런 NHB의 해명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고 재반박했다.
그는 "아버지의 유훈에 따라 서류를 포함해 자택에 있던 유품들은 유언 집행자인 나와 누이 리웨이링(李瑋玲)의 관할 하에 처리되어야 한다"며 "유언 집행자도 유산 배분 대상도 아닌 사람의 허가 받지 않은 유품 취득은 절도와 권한 침해에 해당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리콴유 전 총리는 싱가포르가 영국 식민지배를 받던 1959년 자치정부 시절부터 독립 이후 1990년까지 총리를 지내면서, 싱가포르를 동남아시아 부국으로 건설했다는 평가와 함께 국민의 존경을 받았다.
그의 장남인 리셴룽은 2004년 총리에 취임 이후 강력한 리더십으로 아버지만큼은 아니지만 지난 10여 년간 국정을 무난하게 이끌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형제들과의 사이가 벌어지면서 명성에 적잖은 타격을 받았다.
특히 리 총리 동생들은 최근 리 총리가 집을 허물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어긴 채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면서 '왕조 정치'를 꿈꾼다고 주장해왔다.
이들은 최근 성명을 통해서는 리 총리가 "아버지를 우상화하는 수법으로 '리콴유 왕조'를 만들고, 아들인 리홍이(李鴻毅·30)에게 권좌를 넘겨주려 한다. 우리는 그를 형제로서도 지도자로서도 신뢰할 수 없다"고 맹비난했다.
궁지에 몰린 리 총리는 최근 남동생의 부인인 리수엣펀(59) 변호사가 아버지의 유언장 작성 과정에 개입했으며, 이 과정에서 집을 헐어버리라는 유언 내용이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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