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신이라 하지만 농민들 간절한 염원 담아"…단비 기원하며 고통받는 민심 위로
(전국종합=연합뉴스) 박병기 기자 = "오정산 산신이시어, 가뭄과 폭염으로 고통받는 민중의 소망을 상제께 고하시고 백령께 알리시어 옥연한 감우를 풍족히 하강하소서"
23일 오후 충북 보은 오성산 정상 삼년산성에서 정상혁 군수와 군의회 의원, 농민 등이 모여 하늘에 지성을 드리면서 비를 염원했다.
바싹 마른 들녘에서 하루가 다르게 타들어가는 농작물을 바라보다 못한 보은군과 농민들이 하늘의 힘이라도 빌려보자는 간절함을 담아 마련한 기우제(祈雨祭)다.
행사가 열린 삼년산성(사적 235호)은 신라 자비마립간 12년(470년) 축성됐다고 전해지며, 주민들이 새해 첫 태양을 맞으면서 건강과 풍년을 기원하는 곳이다.
가뭄이 극심했던 2015년에는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자마자 빗방울이 떨어지는 마술 같은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제를 주관한 정상혁 군수는 "혹독한 가뭄으로 인해 한창 푸르러야 할 농작물이 맥없이 시들고, 농민들의 마음은 새까맣게 타들어 간다"며 "오성산의 영험한 기운이 하늘에 닿아 시원한 빗줄기를 볼 수 있기 바란다"고 기원했다.
같은 날 경남 합천군 가회면 황매산에서도 하창환 군수와 기관·단체장들이 모여 하늘에 술잔을 올리면서 단비를 기원했다.
이 지역은 농업용 저수지의 평균 저수율이 48%대로 내려앉으며 가뭄 피해가 확산하는 추세다.
하 군수는 "군민들이 가뭄 걱정을 잠시 떨치고, 마음의 위안이라도 찾기 바라는 심정에서 기우제를 지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대한불교 조계종 내설악 백담사에서도 해갈을 염원하는 기우제가 봉행됐다.
이순선 인제군수와 군의원, 농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인 행사는 삼귀의례, 헌화, 헌다, 봉행사, 발원문 낭독 순으로 진행됐다.
삼조 스님은 봉행사에서 "간절한 발원을 통해 가뭄으로 고통받는 대중의 우환을 하루속히 사라지기 바란다"고 밝혔다.
기우제는 과거 농경사회에서 비를 기원하던 의식이다. 가뭄이 들면 임금이 직접 나서 제를 지내기도 했다.
과학 기술이 발달한 지금도 가뭄이 심해지면 지방자치단체나 농민단체 등이 앞다퉈 기우제를 연다. 미신이라고 치부할 수 있지만, 가뭄에 고통받는 국민을 위로하는 차원에서 마련된다.
혹독한 가뭄이 닥친 이번에도 전국 20여곳에서 기우제가 열리고 있다. 가뭄이 가장 극심한 충남지역 자치단체들도 앞다퉈 제를 마련해 비를 염원하고 있다.
지난 2일 홍성군 구항면 내현리 거북이마을회가 뒷산 산제바위에서 기우제를 연 것을 시작으로, 서산·홍성·예산 등에서도 하루가 멀다하고 제가 열린다.
예산군은 지난 22일 오가면 신장리 국사봉에 떡과 음식을 차려진 제단을 설치해 놓고 제를 지냈다.
이곳은 예산지역 최대 곡창지대인 오가 원천뜰에 농업용수를 공급했던 국사당보가 있던 곳이다. 무한천이 가까이 있어 항상 물이 풍부한 지역으로도 알려져 있다.
1760년 가뭄이 들어 농민들이 모를 심지 못했을 때 예산현감이던 한경(韓警)이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는 기록도 있다.
황선봉 예산군수는 "비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하늘에 통해 하루빨리 메마른 땅이 해갈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올해 전국에 내린 비는 189.1㎜로 1973년 이후 같은 기간 누적 강수량으로 가장 적다. 평년에 견주면 절반에도 못 미치는 양이다.
농업용 저수지의 평균 저수율은 42%로 평년(59%)을 크게 밑돌고, 보령댐은 총 저수량의 10분의 1도 채우지 못한 상태다.
기상청은 다음달 초 장마전선이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장마에도 충분한 비가 내린다는 소식은 없다.
정부는 가뭄이 장기화되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총력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관정이나 간이 양수시설 등 용수원 개발에 가용재원을 최대한 투입하고, 물이 풍부한 담수호, 하천 등에서 부족한 지역으로 수계를 연결하는 긴급 급수대책도 앞당겨 추진하기로 했다.
지방자치단체에 지원한 265억원의 특별교부세 이외에 추가 예산을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bgi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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