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행 실패시 지상파 3사 중계권료 1천억 이상 날릴 판
축구협회 후원액 대폭 축소…K리그 등 흥행에도 '직격탄'
축구에 대한 관심 줄면서 한국 축구 경쟁력 급속 약화 우려
(서울=연합뉴스) 이동칠 기자 =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지만 우리 축구대표팀이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한다면 그건 말 그대로 '재앙' 수준이다. 한국 축구에 암흑기가 올 수도 있다."
대한축구협회 공식 후원사의 한 관계자는 현재 한국 축구가 놓인 위기감을 여과 없이 표현했다.
울리 슈틸리케 전 대표팀 감독과 이용수 전 기술위원장 사퇴로 초유의 공백 사태를 맞았지만, 한국 축구가 9회 연속 월드컵 본선행 무대를 밟을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하지만 한국이 월드컵 본선 직행권이 걸린 2위를 지키고 있음에도 남은 이란,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 결과에 따라 러시아행이 좌절될 수 있는 위험 요인을 안고 있다는 게 '위기감'을 잠재우지 못하는 요인이다.
우리나라가 8월 31일 월드컵 최종예선 9차전 홈경기에서 이란을 잡고, 우즈베키스탄이 중국에 패한다면 남은 한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본선 진출을 확정한다.
여러 조건을 고려할 때 9월 5일 예정된 우즈베키스탄과의 월드컵 최종예선 10차전 원정에서 남은 한 장의 본선행 티켓의 주인이 결정될 공산이 크다.
승리하면 다행이지만 우즈베크에 발목을 잡히면 한국 축구는 충격에 빠져 축구협회 회장단 총사퇴로 이어질 전망이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이후 32년 만에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본선 무대를 밟았던 한국 축구가 러시아행에 실패한다면 다시 32년 만에 본선 진출이 좌절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기 때문이다.
한국 축구의 운명이 걸린 월드컵 최종예선 2경기를 남겨두고 위기감이 가장 강하게 감지되는 건 1천320억 원에 이르는 거액 중계권료를 지불한 지상파 3사다.
KBS와 MBC, SBS는 사당 440억 원의 중계권료를 분담하지만, 한국이 본선 진출에 실패하면 광고 유치를 통해 절반도 회수하기 어렵다.
지상파 관계자는 "한국이 러시아월드컵 8강에 올라야 수지를 맞출 수 있지만, 본선에도 못 나간다면 그건 최악의 상황"이라고 말했다.
축구협회와 대표팀을 후원하는 대형 스폰서들의 우려도 지상파에 못지않다.
축구협회는 나이키와 KEB하나은행, KT, 네이버, 교보생명, 현대자동차, 아시아나항공, 코카콜라, 서울우유 등 9개사와 후원 계약을 유지하고 있다.
최대 스폰서인 나이키는 2019년까지 현금 600억 원(연간 75억 원)과 물품 600원 등 1천200억 원을 지원한다. 2022년까지 계약된 KEB하나은행도 1998년부터 대표팀을 후원해 왔다.
대부분 계약 기간이 2019년까지여서 본선 진출에 실패하더라도 당장 계약 해지 등 사태로 번지지 않겠지만 2019년 초 재계약 협상 과정에서 후원 금액의 대폭 축소가 불가피하다.
축구협회에도 영향을 미쳐 예산 삭감 등이 뒤따른다. 올해 예산으로 798억 원을 편성한 축구협회는 절반에 가까운 418억 원을 후원액 등 자체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예산 규모가 줄어들면 올해 187억 원의 대표팀 운영비와 158억 원을 배정한 FA컵, 초중고·대학리그 등 국내 대회 운영비, 72억 원을 할당한 생활축구 예산 등이 대폭 삭감될 수 있다.
축구협회 내부에서도 월드컵 본선행 좌절 시 직원 월급 동결과 인원 감축 등 '쓰나미'가 덮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아울러 대표팀 성적이 국내 축구 리그 흥행을 영향을 미쳤던 걸 고려하면 현재 관중 동원에 어려움을 겪는 프로축구 K리그 클래식 등 흥행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
또 '차범근 키즈' '박지성 키즈' 등 대표팀 스타들을 보고 축구를 꿈꿨던 유망주들의 축구 종목 기피와 축구에 대한 관심 저하로 한국 축구의 전체 경쟁력이 떨어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축구계 관계자는 "한국 축구에 공포감을 키우는 건 바람직하지 않지만 '어떻게 하든 우리나라가 월드컵 본선에 올라갈 거야'라는 막연한 희망에 기대는 것도 위험하다"면서 "현재의 국면을 한국 축구의 위기로 인식하고 남은 2경기에 총력을 모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른 후원사 관계자도 "안방에서 열리는 이란과의 월드컵 최종예선 9차전에서부터 뜨거운 열기로 경기장을 가득 메운다면 태극전사들도 덩달아 기운을 낼 수 있을 것"이라면서 "한국 축구에 최악의 상황이 닥치지 않도록 힘을 모으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chil881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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