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삼성과 특수관계서 제외…"많은 시간 흐른 만큼 살펴보겠다"
"우리 법체계는 특수관계 아니라고 보지만 실질적 영향력 행사 가능"
"재단 기금·운영 독립성 보장돼야…삼성 스스로 의구심 해소할 필요 있어"
(세종=연합뉴스) 박상현 민경락 이대희 기자 =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25일 민간재단인 삼성꿈장학재단에 대해 "삼성의 동일인(총수) 관련자에서 제외된 2009년 이후 많은 시간이 흐른 만큼 (특수관계 여부 등을) 살펴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연합뉴스와 가진 취임인터뷰에서 "동일인 관련자에서 제외된 비영리법인이 제외 요건에 해당하지 않게 되면 제외 결정을 취소할 수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자산 규모 5조원 이상의 공시대상기업집단 소속 기업들은 매년 특수관계에 있는 주주들의 지분 현황과 변동 내역을 공시하고 관련 자료를 공정위에 제출해야 한다.
공정위는 총수가 비영리법인, 계열사 등 주주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 등을 판단해 특수관계인 지정 여부를 정한다.
만약 총수가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에도 특수관계로 지정되지 않으면 특수관계 지분이 낮게 집계돼 기업집단에 대한 총수의 지배력이 과소 평가될 수 있다.
삼성꿈장학재단과 삼성과의 특수관계 여부가 논란이 된 것은 삼성꿈장학재단이 삼성과의 특수관계에서 제외된 2009년 이후 상황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삼성꿈장학재단(옛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은 이른 삼성X파일 사건 등에 대한 도의적 책임으로 삼성 이건희 회장이 사회에 헌납한 8천억원을 재원으로 2006년 설립됐다.
이름만 보면 삼성문화재단, 삼성생명공익재단 등과 같은 삼성 계열의 공익법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법적으로 삼성과 아무 관련이 없다.
삼성꿈장학재단은 삼성SDS의 지분 3.9%를 갖고 있지만 특수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삼성SDS의 주요 주주로 공시되지 않는다.
삼성꿈장학재단의 삼성SDS 지분은 삼성전자[005930](22.58%), 삼성물산[028260](17.08%),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9.2%) 등에 이어 4번째로 많고 이부진 호텔신라[008770]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장(사장)이 보유한 지분 규모와 같다.
삼성이란 이름을 사용하고 총수일가 수준의 계열사 지분까지 갖고 있지만 삼성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삼성꿈장학재단의 독특한 위상은 그 설립 배경과 관련이 깊다.
재단 설립 당시 재원 8천억원은 기존 삼성이건희장학재단 출연액 4천500억원과 이 회장 가족의 삼성에버랜드 지분(8.37%) 등 추가 출연 재산으로 구성됐다.
삼성 측은 당시 X파일 등에 대한 도의적 책임으로 재산을 환원한 만큼 재단 운영에 일절 간여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실제로 재단은 삼성과 전혀 관련 없는 인사들로 이사회를 구성하고 순수 민간 장학재단의 성격을 유지해왔다.
재단 설립 초기 재단 이름에서 '삼성'을 떼어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사회 환원액이 적지 않았고 기부문화를 유도한다는 취지에서 재단 명칭은 그대로 사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단은 국내 최대 규모의 민간 장학재단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아동·청소년을 위한 장학사업을 펼쳤고 교사 멘토를 활용한 장학 사업 등 창의적인 프로그램으로 장학사업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공정위는 2009년 4월 재단이 삼성과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판단하고 이건희장학재단 때부터 유지돼 온 재단의 삼성의 동일인 관련자 지위를 취소했다.
하지만 재단이 특수관계에서 제외된 직후 삼성으로부터의 독립성이 흔들리는 정황이 포착되기 시작했다.
당시 신인령 재단 초대 이사장은 국무총리실 민간인 사찰 명단에 오르는 등 정부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사퇴 압력을 받아 결국 이사장직에서 물러났고 후임에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출신의 손병두(현 호암재단 이사장) 씨가 호선됐다.
신 전 이사장 퇴임 직후 삼성생명[032830] 자회사의 상무가 사무총장에 임명됐다. 또 삼성생명 직원 2명이 재단으로 파견돼 철저한 보안 속에서 기금 관리 업무를 맡았다.
현 송석구 재단 이사장은 2015년 10월 열린 삼성언론재단 창립 20주년 행사 때 당시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 장충기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 등 삼성 계열사·공익법인 주요 인사들과 함께 참석해 마치 삼성가의 일원이 된 듯한 인상을 남겼다.
지금도 재단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를 구성하는 10명의 이사 중 이수창 전 삼성화재[000810] 사장, 이우희 전 에스원[012750] 사장 등 삼성계열사 사장 출신이 두 명이나 포함돼있다.
재단과 아무 관계가 없다며 재단의 지분 공시 의무를 면제받은 삼성이 사실상 '삼성 측'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을 재단에 내려보내 8천억원의 기금과 계열사 지분을 관리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 위원장은 "우리 법체계에서는 재단과 삼성 관계를 특수관계가 아닌 것으로 판단할 것이다"면서도 "그렇다고 이것이 삼성이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사의 자격요건 등을 중시하는 한국의 법체계에서 보면 특수관계가 아니라고 판단하겠지만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루트는 이 세상에 너무도 많다"고 강조했다.
실질적 영향력 요건을 회사의 현직 임원이 이사로 등재해있는지 여부 등 물리적인 상황 위주로 해석하는 한국의 법 체계에서는 재단과 삼성을 특수관계라고 판정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영향력이 없다고 볼 수는 없다는 뜻이다.
김 위원장은 재단을 삼성의 특수관계인으로 지정하는 것보다 재단의 설립 취지대로 삼성꿈장학재단의 독립적인 운영·기금관리를 보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삼성꿈장학재단이 사실상 삼성의 공익법인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의심을 불식하려면 우선 재단이 보유 중인 삼성 계열사 주식을 매각할 필요가 있다는 뜻도 내비쳤다.
김 위원장은 "삼성그룹이 사과 발표하고 재단이 만들어진 것이라면 그룹과 관계를 끊어야 한다"며 "사회와 시장이 특수관계도 아닌데 왜 주식을 보유하냐는 의구심을 갖는다면 기대에 맞는 조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삼성 등 4대그룹은 법 지키는 것만으로 사회나 시장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한다"며 "법과 도덕 중간에 있는 사회와 시장의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현실적인 개혁 방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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