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경 '강컨텐츠' 대표 "뒤틀린 삶 산 사람 이야기"
(서울=연합뉴스) 김지헌 기자 = "30년간 길바닥에서 약자를 위해 춤을 춘 사람의 이야기를 꼭 전하고 싶었어요. 국내 개봉은 생각도 안 했는데 세상이 바뀌었는지 이렇게 상영하게 됐습니다."
25일 만난 영화사 '강 컨텐츠'의 박미경(51) 대표는 개봉까지 다사다난했던 독립영화 '바람의 춤꾼'을 설명하며 감회에 젖은 표정을 지었다.
지금은 그다지 특별해 보이지 않는 사회인인 그는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재학시절 '연세대 백장미'로 불리며 1987년 민주화 항쟁의 선두에 섰다.
최대한 멀리 화염병을 던져야 해 주로 남학생들이 대오 전열에 서던 시절에 박 대표는 여학생으로 드물게 앞으로 나오는 일이 많아 그런 별명을 얻었다고 한다.
당시 '운동권 필독서'로 나치에 저항한 독일 남매를 그린 실화 소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의 독일어 원제에서 따온 별명이기도 하다.
박 대표는 "원래 연극배우가 꿈이었던 터라 경찰에 붙잡혀도 시위와 상관없는 척하며 눈물로 호소해 풀려나곤 했다"고 웃으면서 과거를 떠올렸다. 하지만 얘기를 들을수록 학창 시절은 위태로움의 연속이었다.
그는 "제가 한열이처럼 됐을 수도 있었다"고 했다. 2학년이던 1986년 6월쯤 최루탄이 머리 위에서 터졌다고 한다. 이마에는 그때의 흉터가 아직도 남았다. 그는 "그땐 제 발로 세브란스까지 뛰어갔다"고 떠올렸다.
이 사건이 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양대 시위 때는 더욱 위험했다. 최루탄 직격탄을 왼쪽 어깨에 맞은 것이다. 박 대표는 "몇 미터를 날아갔던 것 같은데 다행히 풀밭에 떨어져서 크게 다치진 않았다"며 "그때 옆에 있던 상호(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형이 날 부축했다"고 설명했다.
박 대표와 친하게 지낸 이한열 열사는 이듬해 6월 9일 최루탄 직격탄을 머리에 맞아 다음 달 숨졌다. 이를 계기로 6월 항쟁은 더욱 뜨거워졌고, 이 결실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약속한 6·29 선언을 끌어냈다.
그는 "한열이가 쓰러진 이후 저는 시위를 주도하고 나서 도망 다니던 시기였다"며 "숨어 지내다가 어느 신문 가판대에서 선언 소식을 접했는데 '이제야 승리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작은 체구로 민주화 항쟁 대오의 선두에 선 박 대표는 최근 또 다른 투쟁을 시작했다. 국내 개봉조차 불투명했던 영화 '바람의 춤꾼'이 그것이다.
'거리의 춤꾼'으로 불리는 이삼헌씨의 2002년 이후 15년간 행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세종대 무용학과를 나온 이씨는 발레리노가 되려고 했으나 5·18 광주 민주화 항쟁에 충격을 받아 꿈을 접고 거리로 나서서 죽은 자들을 위로하는 한풀이춤을 춰왔다.
영화 제작 기간은 말 그대로 15년. 박 대표의 친구인 최삼진 감독이 작업해오다가 2014년 박 대표가 본격적으로 합류했다.
박 대표는 "2014년 이씨가 프랑스 세계 샤먼축제에 초대받는 것을 보고 이를 꼭 영화로 만들겠다고 결심했다"며 "처음엔 국내 개봉은 생각도 못 했고 외국에서 상영할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한국 문화의 한 편에 이씨가 보여온 아픔과 부조리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이러다 보니 현실적으론 과연 한국에서 상영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컸다고 한다.
주변의 도움으로 후반 작업을 겨우 이어가던 지난해 말 '비선 실세' 최순실씨 이야기가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영화계 분위기가 바뀌어 영화진흥위원회 등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박 대표는 "어렵사리 개봉이 결정되고 멀티플렉스를 제외한 전국 영화관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 20개 스크린을 확보했다"며 "스크린 20개면 독립영화치고는 엄청난 성과"라고 웃었다.
총예산 2억8천500만원짜리 이 영화는 이달 6일 개봉해 호평을 받고 있다. 특히 독립영화관이 아닌 일반극장 극장주 한 명이 "시대를 일갈하는 작품이다. 이런 좋은 영화를 보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한 것에 큰 힘을 받았다고 한다.
박 대표는 "이 영화는 발레리노가 꿈이었지만, 시대를 잘못 만나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뒤틀린 삶을 산 사람의 이야기"라며 "그의 삶을 후대에 전하는 작업은 곧 제가 학창시절 했던 투쟁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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