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사라졌는데 경유세인상?…정공법 대신 우회 증세 비판 제기
(세종=연합뉴스) 정책팀 = 정부가 경유세인상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담뱃세에 이어 서민 증세 논란이 다시 고개를 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경유세가 서민층의 부담을 상대적으로 가중하고 현 정부 조세정책 기조가 당분간 명목적인 증세는 없다고 밝힌 점도 담뱃세 인상 기시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다.
경유차가 미세먼지의 주범이라는 점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경유세인상이 실효성은 거두지 못하고 서민 호주머니만 터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 담뱃세 인상 쏙 빼닮은 경유세인상 논란
25일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 국책연구기관에 따르면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다음 달 4일 에너지세 개편 공청회에서 경유세 인상안을 담은 개편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현재 100 대 85인 휘발유와 경유의 상대가격과 관련해 경유 가격을 휘발유의 90%, 100%, 125%로 현행보다 올리는 방안을 비롯해 10여 가지 에너지원 상대가격 조정 시나리오가 개편안에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10여 가지 시나리오 모두 경유세를 인상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가 연구용역 결과를 토대로 에너지 세제 개편에 나서겠다고 밝혔다는 점을 고려하면 경유 가격이 오를 공산이 크다.
그러나 정부의 경유세인상 움직임에는 벌써 반론이 만만치 않다.
특히 경유세인상이 꼼수 증세 논란을 빚은 담뱃세 인상을 여러모로 쏙 빼닮았다는 점 때문이다.
정부는 흡연 억제를 위해 2015년 1월부터 담배에 부과하는 세금을 2천원 인상했다.
그러나 정부가 증세라는 정공법보다 담뱃값 인상이라는 우회적인 방법으로 세수를 늘렸다는 곱지 않은 시선이 상당했다.
담뱃세가 간접세여서 서민층에 상대적으로 더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도 논란의 소지가 다분했다.
박근혜 정부가 세율을 인상하지 않고 지하경제 양성화로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했던 것처럼 문재인 정부 역시 당장 증세 없이 공약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겠다고 밝힌 것도 '전철(前轍)'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경유세가 간접세이고 서민층에 더 부담을 준다는 점도 담뱃세와 유사한 대목이다.
한국에서 간접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4년 현재 32.8%로, 15개 주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진국 평균 26.5%보다 6.3%포인트 높다.
가뜩이나 간접세 비중이 높은데 경유세까지 인상하면 간접세 위주의 조세 체계가 더욱 심화된다.
간접세는 직접세보다 조세 저항이 덜해 정부 입장에서 세금을 거두기 편하지만, 소득재분배를 저해하고 양극화를 악화하는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아울러 현재 333만여 대 경유 화물차 중 보조금을 받는 화물차는 운송영업용인 11.4%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보조금을 받지 못해 서민들의 피해도 우려된다.
경유차는 연비가 좋은 데다 소형 승합차 등이 많아 주로 생계형 소상공인, 서민들이 탄다.
실제 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경유세를 10% 인상할 때마다 비사업용 경유 화물차의 월평균 유류비 지출액은 6천원 증가하고 총 295만대의 월 평균 유류 지출은 181억원 증가한다는 분석도 있다.
◇ 경유세 올리면 미세먼지 줄어드나…정부 내부서도 이견
정부가 수송용 에너지 상대가격 합리적 조정방안, 일명 에너지 세제개편안 연구용역에 착수한 것은 지난해 6월 발표된 미세먼지 관리 특별대책의 일환이다.
그러나 연구를 위해 꾸려진 범부처 태스크포스(TF)에서도 이견은 좁혀지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경유가 미세먼지를 배출하기는 하지만 '주범'인지에 대한 명확한 증거가 없다는 점이 문제였다.
실제로 지난해 정부 대책 발표 당시 인용된 국립환경과학원의 대기오염물질 배출량 통계(2013년 기준)를 보면 미세먼지 발생원은 국내가 아닌 국외 영향이 적게는 30%, 많게는 50%로 분석됐다.
고농도 미세먼지 발생 시 국외 영향은 최대 80%까지 높아졌다.
미세먼지 발생원의 대부분은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외부에 존재하는 셈이다.
최근 여름철로 접어들면서 미세먼지가 사라졌다는 점도 발생원이 우리 내부보다는 외부에 있다는 점을 뒷받침한다.
기상청에 따르면 미세먼지 농도는 지난달 중순 이후로 급격히 낮아지고 있다. 중국발 황사로 전국이 몸살을 앓았던 지난달 5일 서울의 미세먼지 농도는 202.9㎍/m³에 달했지만 이달 들어 지난 7일에는 15.0㎍/m³까지 떨어졌다.
경유 차량이 미세먼지의 '주범'이라면 계절이나 대기 순환 여부와 관계없이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려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경유를 지목하고 경유 가격 조정방안 연구에 착수했는데 그 사이에 미세먼지 농도는 낮아지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 셈이다.
실제 정부 TF 내에서도 이를 근거로 경유세인상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국책연구기관의 연구용역 안 결과에서도 경유 가격을 올려봤자 미세먼지 배출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는 분석 결과가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변수는 문재인 대통령 당선으로 새 정부가 출범했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은 2030년까지 경유 승용차 운행을 전면 중단하고 이를 통해 임기 내에 미세먼지 배출량을 현재보다 30% 이상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취임 직후인 지난달 15일 미세먼지 감축을 위한 대책을 직접 지시했다.
대통령 지시가 내려온 만큼 미세먼지의 주범이 아니더라도 경유차 감소를 위해 경유에 붙는 유류세를 올릴 수밖에 없는 입장에 처한 셈이다.
유류세는 비단 징수뿐만이 아니라 사용에서도 논란 투성이다.
교통·에너지·환경세와 교육세는 특정 조세로부터 발생하는 조세수입을 특정 목적 지출에 할당하는 세금인 목적세다.
그러나 교통·에너지·환경세는 원래 부과목적에 맞게 사용하는 비율이 낮은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유류세 납세자와 교육세 수혜자 간에도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목적세의 수익자 부담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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