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80년대 자생테러서 교훈·극단화된 이민 2세 인구 적은 것도 영향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프랑스, 영국, 벨기 등에서 수시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에 의한 대형 테러 공격이나 테러 시도 소식이 이어지고 있어 유럽에서 테러가 일상화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주변국과는 달리 영국이 빠진 유럽연합(EU)의 '빅3'인 이탈리아는 아직까지 직접적인 테러 공격에 노출되지 않아 그 원인과 이유에 관심이 쏠린다.
최근 맨체스터와 런던 등 영국에서 잇따라 테러가 일어나고, 파리에서도 테러 시도가 끊이지 않자 현지 방송의 시사 토크쇼 등에서도 이탈리아에서는 왜 테러가 일어나지 않는지, 이탈리아 도시에서 테러가 일어나면 과연 어디가 목표물이 될지 등에 대해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현지인들이 이탈리아가 아직 테러 공격에서 건재한 이유로 제시하는 가설은 여러가지다.
대표적으로 꼽는 것 중 하나는 허술해 보이는 겉보기와 달리 이탈리아 정보기관과 경찰의 역량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이탈리아의 한 전직 언론인은 "이탈리아 정보 기관은 수 십 년 동안 암약한 마피아 동태 파악에 단련돼 있는데다 196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 이어진 이탈리아 내부의 자생 테러를 겪으며 다른 나라에 비해 뛰어난 대테러 능력을 습득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탈리아는 85명의 사망자를 낸 1980년 볼로냐 중앙역 테러 등을 비롯해 소위 '납의 시대'로 불리던 1980년대 초반까지 극좌와 극우 무장세력이 자행한 정치적 테러가 빈발했다.
그는 "지금도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 곳곳에 은밀하게 침투해 해악을 끼치는 마피아가 결국 정보 기관의 역량을 키워줬다는 점에서 '마피아의 역설'인 셈"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이탈리아는 이주민을 받아 들인 역사가 영국이나 프랑스, 독일 등에 비해 짧은 터라 이민 2세의 문제가 본격화되지 않은 것도 아직까지 별다른 테러가 없는 결정적 요인으로 여겨진다.
이탈리아는 발칸 반도의 정세가 불안해진 1990년대 들어서야 대량 이민의 역사가 본격화됐다. 프랑스나 벨기에, 영국의 테러범들이 주로 사회에 동화하지 못하고 극단화한 이민 2세나 3세였음을 감안하면 짧은 이민 역사가 테러 여지를 줄인 요인으로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탈리아는 이슬람 인구 역시 최대치로 잡아도 인구의 3%가량인 200만 명으로 다른 서유럽 국가에 비해서는 많지 않은 편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도 23일 대테러 정책 전문인 프란체스카 갈리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대 교수를 인용, 이탈리아에는 극단화 가능성이 있는 이민 2세 인구가 많지 않은 덕분에 대테러 기관이 수상한 동태의 용의자를 밀착 감시하기가 용이하다고 지적했다.
갈리 교수는 "테러 용의자를 면밀히 감시하려면 (정보요원)20명이 필요하다"며 테러를 벌일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많을 경우에는 그만큼 대테러 요원들도 더 필요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런던 브리지 테러범 중 1명인 이탈리아-모로코 이중 국적자인 유세프 자그바(22)가 이탈리아에서는 당국의 철통 감시를 받은 반면, 그가 런던으로 이주한 뒤로는 이탈리아 당국의 통보에도 불구하고 영국 정보 당국의 감시를 전혀 받지 않은 것은 이탈리아와 영국 당국이 처한 상황이 이처럼 다른 데에서 비롯됐다.
아울러, 과거 리비아를 식민 지배한 이탈리아는 시리아와 리비아 등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 격퇴 동맹군에 참여하지 않아 IS에 보복 공격을 빌미를 주지 않았다는 해석도 나온다. 프랑스, 영국 등이 IS 격퇴 동맹국에 적극 참여한 것과는 다른 행보다.
혹자는 또한 높은 실업률과 경제난에 시달리는 이탈리아에서 테러 공격을 해봤자 IS로서는 선전 효과가 떨어진다는 점도 고려됐을 것이라고 말한다. 경제적으로 번영하고, 부유한 독일, 영국, 프랑스와는 달리 이탈리아, 특히 로마 이남 남부에서는 테러를 할 명분도,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특히 교황이 있는 로마에서 테러가 일어날 경우 종교 전쟁으로 비화돼 국지적 전쟁이 아닌 전면전으로 치달을 수 있는 까닭에 IS도 섣불리 이탈리아를 공격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이런 여러 이유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 역시 테러의 청정 지역은 아니며, 테러 공격이 일어나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비관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실제로 이탈리아에서는 작년 12월 독일 베를린 크리스마트 마켓을 트럭으로 공격한 테러범 아니스 암리가 밀라노에서 경찰 검문에 저항하다 총격전 끝에 사살됐고, 지난달 중순에는 밀라노 중앙역에서 아프리카계 청년이 칼을 휘둘러 보안요원이 다치는 등 테러 시도로 봐도 될만한 사건들이 종종 일어나고 있다.
여기에 이탈리아가 유럽행 아프리카 난민의 최대 관문이 되며 난민 대량 유입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 향후 테러의 씨앗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북부 토리노에 거주하는 중년 여성 마리아는 "물리적으로 이탈리아가 직접적인 테러 공격을 당하진 않았지만, 이탈리아 내부에서 언제 어디서 테러가 나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는 게 상당수 이탈리아인들의 생각"이라며 "얼마 전 토리노 중심 광장에서 벌어진 소동은 이미 이탈리아인들도 테러를 민감하게 의식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지난 3일 토리노 산카를로 광장에서는 3만 명의 유벤투스 팬이 모여 레알 마드리드와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함께 응원하다가 폭죽 소리를 테러로 오인해 한꺼번에 달아나느라 큰 혼란이 빚어졌다.
이 사건으로 1천500여 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고, 중상자 1명은 약 2주 후 당시 입은 부상으로 사망했다.
한편, 이탈리아는 현재 직접적인 테러 공격이 없을 경우 취할 수 있는 가장 높은 단계인 테러 경보 등급을 유지한 채 프란치스코 교황이 거주하는 바티칸, 로마 콜로세움과 트레비 분수, 밀라노 대성당 등 상징성이 높은 주요 관광지에 무장 군인들을 배치하는 등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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