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직 자위대원 24일 자진 입국…경찰에 체포돼 조사받아
(천안=연합뉴스) 이은중 기자 = 충남 천안 망향의 동산 일제 강제노역 사죄비를 위령비로 무단 교체한 전직 일본 자위대 자위관(자위대원)이 경찰 조사를 받고 풀려났다.
이 60대 남성은 경찰에서 "역사적 사실과 다르게 잘못 쓰인 부분을 바로 잡으려고 교체했다"며 범행을 시인했다.
26일 천안서북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4월 11일 오후 망향의 동산 무연고 유골 합장 묘역 내 일제 강제징용 사죄 표지석이 '위령비'라고 쓰여진 표지석으로 교체된 채 발견됐다.
1983년 세운 원래 사죄비에는 "귀하들께서는 일본의 침략 전쟁 시 징용과 강제연행으로 강제노동의 굴욕과 고난에 가족과 고향 땅을 그리워하다가 귀중한 목숨을 빼앗겼습니다. 나는 징용과 강제연행을 실행 지휘한 일본인의 한사람으로서 비인도적 그 행위와 정신을 깊이 반성하여 이곳에 사죄하는 바입니다"라는 내용이 적혔으나, '위령비'라는 문구와 이름이 적힌 비석으로 무단 교체된 것이다.
경찰은 표지석을 바꿨다고 자처하는 일본인이 일본에서 망향의 동산으로 국제우편을 보내온 것을 토대로 범인을 추적해 왔다.
편지를 쓴 사람은 자신을 '1983년 이곳에 사죄비를 세운 일본인 요시다 유우토의 아들 요시다 에이지'라고 소개한 것이다.
그는 A4 용지 2장 분량의 편지에 일본어와 한글로 "우리 아버지는 강제징용 책임이 없다. 사죄할 필요가 없다. 위령비가 마땅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행방을 쫓던 경찰은 지난 24일 인천공항을 통해 자진 입국하던 오쿠 시게하루(奧茂治·69)씨를 요시다 에이지씨의 사주를 받아 사죄비를 훼손한 혐의(공용물건 손상)로 붙잡았다.
오쿠씨는 지난 3월 20일 입국해 경기도 벽제화장터 인근 석재공장에서 '위령비'라고 쓴 석판을 45만원에 제작했다. 이 석재공장은 한국에 올 때마다 자주 이용한 개인택시 운전사에게서 소개받았다.
그는 이 택시를 타고 망향의 동산으로 곧장 내려간 뒤 사람들 눈을 피해 정문이 아닌 뒤쪽으로 난 쪽문으로 망향의 동산에 들어갔다.
당시 망향의 동산 정문 옆 경비실에는 2명의 경비원이 지키고 있었지만 오쿠씨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오쿠씨는 범행 후 다음 날 인천공항을 통해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경찰 출석 요구를 받아 자진 입국했다"며 "사죄비 내용이 역사적 사실과 달라 사죄비 명의자 아들의 위임을 받아 교체한 것"이라고 범행 사실을 순순히 인정했다.
이어 "내가 한국법에 의해 잘못된 것이 있다면 처벌을 받겠지만 (사죄비 내용이 역사적 사실과 달라)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한 행동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확신한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오쿠씨를 한 차례 더 소환해 보강수사를 할 예정이다.
그는 경찰 보강수사와 재판진행 등을 이유로 출국이 금지된 상태다.
경찰은 오쿠씨를 사주한 요시다 에이지씨에 대해서도 오쿠씨와 같은 방법으로 체포영장을 발부받고 출석요구서를 보낼 예정이다.
이곳 사죄비는 위안부 강제연행 사실을 알린 요시다 세이지(吉田淸治·2000년 사망)씨가 세운 것으로, 요시다 에이지는 그의 맏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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