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당, 제노바 등 아성 내주며 타격…오성운동은 1차투표서 전멸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25일 치러진 이탈리아 일부 자치단체 수장을 뽑는 지방선거 결선투표에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중심이 된 중도우파가 압승을 거뒀다. 집권 민주당은 제노바를 비롯한 아성들을 내주며 타격을 입었다.
26일 공개된 개표 결과에 따르면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대표를 맡고 있는 전진이탈리아(FI)가 중심이 된 중도우파 연합은 리구리아 주도 제노바 등 관심이 집중된 대부분의 도시에서 민주당 또는 무소속 후보를 여유있게 누르고 승리를 챙겼다.
중도우파 연합은 제1야당 오성운동의 2주 전 1차투표 전멸로 중도 우파와 민주당 간의 맞대결로 주로 전개된 이번 결선 투표에서 22개의 주요 도시 중 총 16곳을 승리로 이끌며, 4곳의 승리에 그친 민주당을 압도했다.
수도 로마와 밀라노, 나폴리, 토리노 등 주요 도시가 작년 이맘 때 시장 선거를 이미 치른 터라 선거 규모는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이번 선거는 내년 봄으로 예상되는 총선에 앞서 정치 지형을 미리 가늠해볼 시험대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이날 결선 투표는 2주 전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은 110개 지자체, 유권자 약 430만명을 상대로 진행됐다. 투표율은 46%로 극히 저조했다.
FI가 마테오 살비니 대표가 이끄는 극우 성향의 북부동맹 등과 연대한 중도우파는 노동자들의 입김이 강해 반 세기 넘게 중도 좌파가 장악해온 제노바에서 마르코 부치(득표율 54.5%)를 내세워 낙승하는 파란을 일으킨 것을 비롯해 베로나, 칸탄차로, 라퀼라 등 관심 지역 대부분을 승리로 장식했다.
반면, 마테오 렌치 전 총리가 대표를 맡고 있는 민주당은 1년 전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인근 도시 토리노 시장직을 포퓰리즘 성향의 제1야당 오성운동에게 내준 데 이어 제노바 시장까지 내주며 전통적인 지지 기반 균열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민주당은 지지세가 강하던 라퀼라에서도 1차 투표에서 1위로 결선에 진출한 후보가 우파 후보에게 패하며 충격이 배가됐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를 통해 시장을 맡던 12개 주요 도시를 우파 연합에 빼앗겼다.
작년 12월 헌법개정 국민투표 부결의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난 렌치 전 총리는 "지방선거는 전국적인 민심을 대변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면서도 "제노바와 라퀼라를 비롯한 몇몇 패배는 아프다"고 말했다. 차기 총선을 승리로 이끌고 총리직에 복귀한다는 그의 구상도 이번 선거로 빨간불이 켜진 것으로 평가된다.
거꾸로, 우파 연합은 코모, 피아첸차, 몬차, 피스토이아 등에서의 승리도 확정짓는 등 이번에 결선 투표를 치른 25개 주요 도시 대부분에서 승리를 거두며 작년 지방선거 대패를 만회했다.
당시 분열로 인해 참패했던 우파 정당들이 이번에 굳건한 연대로 압승을 거둔 것은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영향력이 여전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이탈리아 정계는 분석하고 있다.
정치 분석가 스테파노 폴리는 일간 라 레푸블리카에 "이번 선거 결과는 좌파 진영엔 매우 뼈아픈 손실이고, 베를루스코니는 정치적으로 아직 죽지 않았음을 스스로 입증했다"고 지적했다.
사업가에서 정치인으로 변신, 3차례 총리를 역임한 뒤 2013년 탈세로 유죄 판결을 받고 상원의원직을 박탈당한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작년에 심장 판막 수술을 받으며 은퇴 수순을 밟는 듯 했으나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우파 연대를 막후 조율하고, 미디어에도 부쩍 모습을 드러내며 우파 후보들을 측면 지원했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를 구심점으로 우파 연합이 내년 총선에서도 연대를 유지한다면 오성운동과 민주당의 1위 싸움으로 여겨지던 총선은 다수당을 점칠 수 없는 예측불허 국면으로 흘러갈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그가 대표를 맡고 있는 FI는 현재 전국 지지율이 14% 안팎으로 지지율 30%를 넘나드는 제1야당 오성운동, 집권 민주당에 훨씬 못미치지만, 지지율 13%선을 기록하고 있는 북부동맹 등 다른 우파 정당들과 힘을 합하면 우파 연대는 오성운동이나 민주당과 지지율 면에서 엇비슷한 수준으로 올라선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승리에 고무된 듯 "우파가 연대를 유지한다면 총선에서 승리하고, 다시 집권할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다.
하지만, 선거구 별로 최다 득표자가 승리하는 방식의 지방선거와 비교할 때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의석수가 정해지는 비례 대표제로 치러지는 총선에서는 정당끼리의 연대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우파가 총선까지 연대를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또 다른 관심 지역이던 파르마에서는 한때 오성운동의 대표 정치인이었다가 베페 그릴로 대표의 비민주적 당 운영에 반기를 들어 출당 조치된 페데리코 피차로티 현 파르마 시장이 결선투표에서 58.5%를 득표, 민주당 후보를 큰 격차로 따돌리고 재선을 확정지었다.
작년 지방선거에서 수도 로마와 토리노 시장을 배출하며 돌풍을 일으킨 오성운동은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대부분 도시에서 결선투표의 문턱조차 넘지 못하는 저조한 성적을 거둬 이번 선거의 가장 큰 패자라는 평가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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