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 앞세워 시민 휴식처·생태공원 파괴…명소 대신 저개발지 선택해야"
(시카고=연합뉴스) 김 현 통신원 = 미국 시카고 미시간호변의 유서 깊은 시민공원에 최대 15억 달러(약 1조7천억 원)의 민간 모금 자금과 지방정부 재원을 투입해 건립되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기념관 단지가 골프장 조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26일(현지시간) 시카고 언론에 따르면 오바마 재단과 시카고 시가 최근 공개한 '오바마 센터' 골프장 설계도가 지역 주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오바마는 시카고 남부 잭슨공원에 박물관·도서관·공연장 등 3개 건물로 구성된 기념관을 짓고 주변에 미 프로골프(PGA) 챔피언십 대회 개최가 가능한 특급 골프장을 조성할 계획으로, 지난주 골프장 설계도를 처음 공개했다.
잭슨공원 내 기존 시립 골프장 2개(18홀 잭슨 골프장·9홀 사우스쇼어 골프장)를 파 70, 전장 7천354 야드의 18홀 골프장으로 전환, 오바마 센터 본관 인근에 1번 홀 티박스를 설치하는 구상이다.
지난 주말 열린 제2차 주민 공청회 참석자들은 '시카고 남부의 오아시스'로 불리던 잭슨공원이 "지나치게 골프에만 역점을 두고 재설계됐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이들은 "운동경기장, 하이킹 트레일, 보행자 전용도로, 야외 식물원 등 잭슨공원 주요 시설이 골프코스로 변경됐다"고 지적했다.
한 여성 참석자는 "생태 복원지가 골프코스로 편입된 설계안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솔직히 역겨웠다"며 "호변을 가로질러 공을 칠 수 있게 하려고 이전 골프장의 생태 복원지를 페어웨이로 바꿔놓았다"고 전했다.
이 골프장은 오바마가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에게 직접 설계를 맡겨 관심을 모았다. 우즈는 지금까지 6개 골프장을 설계했지만, PGA급 골프장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더욱 주목받았으나 최근 우즈가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면서 빛이 바랬다.
골프장 설계 초안 공개 행사에는 우즈 대신 우즈의 사업체 'TGR'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오바마는 재임 8년간 300번 이상 골프장을 찾아 '골프광'으로 불렸으며, 2013년 우즈와 나흘간 골프를 치는데 360만 달러(41억 원)를 쓴 것으로 드러나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우즈와 친분이 두터운 NBC 골프채널 해설가 마크 롤핑은 "골프장 클럽하우스가 오바마 센터 내에 만들어진다"며 "대도시에 있는 최고의 골프장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주민들은 오바마 센터 건립사업이 주민 의사를 배제한 채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며 불만 섞인 목소리를 내왔다.
시카고 시가 혈세를 투입해 잭슨공원 인근 주요 도로를 폐쇄하고, 주택단지와 기념관 단지를 연결하는 도로 2개를 신설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주민들은 반대하고 있다.
한 공청회 참석자는 "미국 최초의 자동차 경주(1895년 시카고~일리노이 주 에번스턴) 출발점 등 역사적 상징물들이 소실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주민은 "오바마 센터가 시카고의 명소이자 남부 주민들의 유일한 휴식처인 잭슨공원을 차지하는 대신 (잭슨공원과 함께 최종 후보지에 올랐던) 저소득층 흑인 밀집지구의 '워싱턴공원'으로 부지를 옮기는 방안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바마 센터는 당초 올봄 착공해 2020년~2021년 문을 열 예정이었으나, 계획이 번복되면서 내년 초로 착공이 미뤄졌다.
chicagor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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