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우 제주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 "편견·차별 없는 세상 된다면 큰 보람"
"경험 많고 나이 들었다 우쭐하면 안 돼"…"연금으로 생활 가능" 무보수 고집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지금껏 학생·학부모·동료 교사들로부터 받은 은혜, 은퇴한 뒤 사회에 나가 보람된 일을 하며 갚겠습니다."
김정우(77) 제주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이 2003년 2월 제주동여자중 교장을 끝으로 40년 교직 생활을 마무리하면서 퇴임사를 통해 학생과 교사, 학부모들에게 다짐한 약속이다.
"퇴직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 말하며 정든 교정을 떠난 뒤 6개월 만에 나선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자원봉사활동은 그의 나머지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우연히 신문에 난 자원봉사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한 그는 서울과 전남 등지에서 제주에 문화체험을 온 400명의 외국인 근로자와 3박 4일간 함께하면서 그들의 어려운 '한국살이'를 접하게 됐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힘들고 어렵고 더럽다며 마다하는 3D업종의 일을 이분들이 맡아주며 경제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는데, 제때 봉급을 받기는커녕 인격적인 대우조차 받지 못하고 있었어요."
외국인 근로자들에 대한 차별과 편견에 분개하며, 그는 그들을 직접 돕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곧바로 제주외국인근로자센터에 자원해 일하면서, 이듬해인 2004년 '외국인을 위한 한국문화학교'를 개설했다. 학교는 물론 교육청에서 쌓은 행정 경험과 인맥을 총동원했다.
교육청의 낡은 컴퓨터를 빌려다 컴퓨터 교육을, 교사로서의 능력을 십분 발휘해 한국어 교육을, 잘 아는 태권도장 사범에게 부탁해 태권도 교육을, 지인의 지인을 통해 어렵게 연결한 민속촌 사물놀이팀을 초빙해 사물놀이 체험까지 모든 일을 도맡아 처리했다.
2006년에는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봉사활동에 전문성과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사단법인 제주외국인평화공동체를 만들었다. 그가 7개월간 제주도청과 노동부, 법원을 오가며 발품을 판 덕분이었다.
이 단체가 모체가 돼 제주이주민센터와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생겨났다.
외국인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결혼이주민, 학생 등 많은 외국인이 제주에 들어오면서 그 범위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는 2008년부터 제주이주민센터와 제주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센터장으로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다 2013년부터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만 전담하고 있다.
김 센터장의 일과는 웬만한 직장인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다.
새벽 4시에 일어나는 그는 4시 10분에 인근 교회에서 새벽기도를 하고, 공원에서 50분간 운동을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집에서 아침 식사를 마치자마자 출근하면 오전 8시 30분쯤 센터에 도착한다.
각종 서류를 결재하고 센터로 찾아온 손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각종 외부일정을 소화하다 보면 하루가 모자랄 지경이다.
제주도청·제주시청·제주지방경찰청·제주교육청 등 기관에서 외국인과 다문화가정 관련 각종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때마다 열리는 유관기관 회의에 참석해야 하고, 교육대학교 학생과 공무원, 경찰 등을 대상으로 다문화 이해 강의를 한다.
게다가 센터장으로서 조금이라도 더 새로운 지식을 얻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다문화 관련 세미나와 포럼에도 참석한다.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열심히 일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단 한 번도 월급을 받지 않고 무보수로 일하고 있다.
김 센터장은 "봉사라는 것은 자기 노력과 시간을 들여 하는 것이지, 돈을 받으면서 하는 것은 봉사가 아니다"라며 연금으로도 충분히 생활이 가능하다며 손사래를 친다.
그는 "퇴직한 뒤 집에만 틀어박혀 있지 않고 사회에 공헌할 수 있다는 게 기쁘고 감사한 일"이라며 "우리나라에서 다문화가족이 편견과 차별 없이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보다 보람된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도 할 일이 너무나도 많다.
남미 파라과이에서 활동하는 친한 선교사가 현지에서의 학교운영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10년 넘게 이어오고 있어 그 간절한 부탁이 언제나 마음에 짐이 되고 있다.
그래서 제주에서의 일을 언젠가 정리하게 되면 아내와 함께 파라과이로 가서 봉사활동을 이어갈 생각을 하고 있다.
이외에도 바쁜 일정에 사놓고도 보지 못한 책들을 마저 보고도 싶고, 사이버 강의나 방송통신대학 등을 통해 새로운 공부를 하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
김 센터장은 "많은 분이 퇴직하고 나서 건강을 위해 운동한다거나 여행을 하고 싶다는 말들을 한다"며 "그러나 1년 내내 운동하거나 여행만 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라고 반문한다.
그는 "적어도 몇십 년간 쌓은 경험을 가지고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본다면 아무리 나이 많은 사람들을 천대하는 세상이라지만, 제 경험상 얼마든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단, 경험이 많다고 나이가 들었다고 목에 힘주거나 우쭐대면 안 된다며 언제나 겸손하게 젊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고 귀띔했다.
bjc@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