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9 공동성명에 큰 틀은 마련…진전된 북 핵능력이 변수
북한의 '비핵화 불가' 주장·미국의 대북 불신 극복 과제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방미길 기내 간담회에서 북한의 핵동결 약속 및 도발 중단을 대화의 입구로, 북한의 완전한 핵폐기를 대화의 출구로 삼는 '행동 대 행동' 원칙에 기반한 2단계 비핵화 해법을 거론함에 따라 한미 정상회담을 포함한 향후 양국 조율의 향배가 주목된다.
문 대통령은 "핵 동결을 핵폐기를 위한 대화의 입구라고 생각하면 핵동결에서 핵폐기에 이를 때까지 여러 가지 단계에서 서로가 '행동 대 행동'으로 교환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화의 '입구'와 관련해 문 대통령은 "최소한도로 북한이 추가적인 핵과 미사일 도발을 하지 않고 핵 동결 정도는 약속을 해줘야 그 이후에 본격적인 핵 폐기를 위한 대화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결국 핵·미사일 실험의 중단에 더해, '핵물질 생산공장'인 영변 원자로 및 재처리시설, 고농축우라늄(UEP) 생산 설비 등의 가동중단 약속을 비핵화 대화의 입구로 설정한 것이었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의 추가 도발을 중단한다면 북한과 조건 없이 대화에 나설 수 있다"는 6·15 메시지를 구체화하면서 조금 더 문턱을 높인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행동 대 행동은 북핵 폐기 프로세스의 '대헌장' 격인 2005년 북핵 6자회담 9·19 공동성명에 명기된 것이다.
상호 신뢰가 빈약한 북한과 나머지 6자회담 참가국(한미중러일)이 서로 취해야 할 단계별 행동을 주고받기식으로 동시 이행하자는 구상인 셈이다.
9·19 공동성명에는 검증가능한 한반도 비핵화라는 최종 목표를 위해 북한의 모든 핵무기와 현존 핵계획의 포기, 핵확산금지조약(NPT) 및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조치로의 복귀, 대북 에너지 지원, 북미 및 북일 관계정상화, 한반도 평화체제 협상 등을 행동 대 행동 원칙 하에 동시이행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다음 해인 2007년에는 9·19 공동성명의 초기단계 이행 조치를 행동 대 행동으로 구체적으로 엮은 2·13 합의가 나왔다. 북한의 영변 원자로와 재처리시설 등 핵시설의 폐쇄와 IAEA 사찰 요원 복귀, 핵프로그램 목록 협의,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절차 개시, 대북 중유 5만t 제공 등을 행동 대 행동으로 이행하는 내용이었다.
또 2007년 10월에는 북한 영변 원자로와 재처리시설, 핵연료봉 제조시설 등의 불능화와 핵프로그램 신고, 중유 100만t 상당의 경제·에너지·인도적 지원 등을 묶은 10·3 합의가 나왔다.
이어 2012년에는 북한이 핵활동 및 미사일 발사를 유예하는 대가로 미국이 영양식 24만t을 북한에 제공하는 북미간 2·29 합의가 있었다.
그러나 이들 합의는 이행 도중에 중단됐고 남은 것은 심각한 상호 불신이었다.
결국 문 대통령의 말 대로 북핵 대화가 재개된다면 다시 '행동 대 행동'으로 북한과 한·미·중·러·일이 주고받을 내용을 협상해야겠지만 9·19 공동성명이 나온 지난 2005년에 비해 급진전된 북한 핵능력을 둘러싼 상호 인식차가 너무 커 비핵화 협상이 열리더라도 지난한 과정이 예상된다.
특히 5차례 핵실험을 통해 핵무기 실전배치를 눈앞에 둔 북한은 핵보유국임을 주장하며 비핵화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고, 미국은 '같은 말을 두 번 사지 않는다'며 극심한 대북 불신감을 숨기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핵보유국인 북·미간에 핵군축 회담을 해야 한다'는 북한과,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추구하는 한·미·일 사이의 괴리가 너무 크다는데 외교가에 이견이 없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이 제안한 대로 북한의 도발 중단과 핵동결 약속을 입구로 하는 협상이 재개된다면 2012년의 2·29 합의에 더해 핵시설 사찰 요원을 복귀시키는 정도를 기준으로 삼아 행동 대 행동의 첫 조치를 협상할 수 있을 것으로 외교가는 보고 있다.
이후 핵동결 이행과 검증, 북한의 기존 핵물질과 핵프로그램의 폐기, 보유 핵무기의 폐기 등으로 이어질 과정에서 대규모 경제지원과 함께 북미관계 정상화와 평화협정 체결까지도 테이블에 올려 놓고 행동 대 행동의 협상이 시작될 수 있다.
또 비핵화 협상의 판이 재가동된다면 북한은 한미군사훈련 중단과 주한미군 철수, 미국의 대 한국 핵우산 제공 공약 폐기 등도 테이블에 올리자고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30일(현지시간) 한미정상회담과 후속 한미간 조율 과정에서 행동 대 행동에 입각한 단계적 비핵화 방안에 대해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느냐가 '행동 대 행동' 원칙을 기반으로 한 2단계 북핵 해법의 시동을 본격적으로 걸 수 있을지에 대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또 미국 본토를 공격할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이 완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이 북핵·미사일 프로그램 동결을 통해 본토에 대한 안보 위협을 통제하는데 만족할 가능성까지 염두에 둬가며 완전한 비핵화 목표를 분명히 하고, 핵동결의 기간을 최소화하는데 주력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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