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 인생플랜] ⑦ 인형극으로 뭉친 그녀들 "행복해요"

입력 2017-07-08 09:00   수정 2017-07-17 14:59

[100세 시대 인생플랜] ⑦ 인형극으로 뭉친 그녀들 "행복해요"

전직 여선생님들 뭉친 울산 1호 퇴직교사 인형극 봉사단

"봉사하면서 자신도 행복하다면 더 바랄 게 없어"

(울산=연합뉴스) 장영은 기자 = "선생님, 세찬이랑 놀고 있었는데 이제 장난 그만 치라고 했는데도 말을 안 들어요. 빗자루로 엉덩이를 막 찌르고요." (새별이)

"새별이도 좋아서 같이 하자고 했는데요. 재미있게 놀고 있었다고요." (세찬이)

"세찬아, 친구가 불편하고 싫어하는 행동을 계속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야. 다른 누군가가 세찬이 엉덩이를 찌르면서 하지 말라고 하는데도 멈추지 않고 계속 장난치면 기분이 어떨까." (선생님)


지난달 28일 오후 울산시 남구 굿네이버스 경남울산본부 울산나눔인성교육센터. 개구쟁이 초등학생과 자상한 선생님, 사랑스러운 엄마로 변신한 60대 안팎 여성들이 흥겨운 인형극 놀이 공연에 푹 빠져 있었다.

실제 공연은 아니지만, 극 중 대사에 맞춰 인형과 한몸이 돼 움직이는 이들의 모습은 마치 프로 인형극단 단원 같았다.

연습은 2시간 넘게 쉴 틈 없이 이어졌다. 연습 중에도 완벽한 공연을 위해 부족한 부분에 대한 조언을 서로에게 아끼지 않았다.

40분짜리 공연 동안 좁은 무대 뒤에 숨어 앉아 막대 인형을 조정하기는 쉽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5분만 쪼그려 있어도 다리에 쥐가 나고 종아리에 알이 배길 정도로 힘겹다고 한다.

무거운 인형을 든 팔도 마비되는 느낌이다. 어떤 이는 팔에 압박 붕대까지 감고 "아이고 팔이야"를 외치면서도 투혼을 발휘한다.


이들은 초·중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정년퇴직하거나 명예퇴직한 여자 선생님들이다. 이름도 모르는 사이였지만, '봉사한다'는 한마디에 다 같이 모여 인연을 맺었다.

주인공은 윤희순(60), 박영희(58), 김경미(60), 김영숙(65), 류두이(64), 권정란(60), 엄정임(50), 이광백(58)씨.

올해 4월부터 굿네이버스가 초등나눔인성교육 프로그램의 하나로 '소중한 몸과 마음을 서로서로 존중해요'라는 주제의 아동 성폭력예방 인형극 공연 봉사자를 모집하자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퇴직교사들이 인형극 공연 봉사를 하는 단체로는 울산 지역 1호다. 모두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는 남다른 의지가 있었기에 탄생할 수 있었다.

지난 3개월가량 매주 1∼2차례 모였고, 8월 본격적인 공연 때까지 연습을 계속할 예정이다. 올해 먼저 10여 개 초등학교 1∼2학년을 대상으로 공연할 계획이다.


인형극단을 이끄는 이윤걸 굿네이버스 간사는 "선생님들은 인형극이 처음이어서 익히는 시간이 걸리지만, 배움의 자세와 봉사를 향한 열정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전했다.

33년 동안 중학교 국어 교사를 지내다 지난해 2월 퇴직한 윤희순씨는 멤버 가운데 가장 말을 많이 해야 하는 해설자 역할을 맡고 있다.

윤씨는 "종 치면 수업 들어가고 종 치면 교실에서 나오고 하다가 퇴직 후에는 그 종소리를 잊을 수 있어 한동안 평온했다"면서 "나도 위하고 남도 위하는 봉사를 하고 싶어 인형극 봉사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음악 봉사도 하기 위해 문화센터를 다니며 하모니카를 배우는 그는 "자신감이 붙으면 팀을 짜서 병원과 요양원에 가서 하모니카 선율로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초등학교 교사를 지낸 김경미씨는 몸이 좋지 않아 건강을 되찾고자 2008년 학교를 떠났다. 회복한 뒤 기간제 교사로 복귀했지만, 자신을 위해 살고 싶어 다시 그만뒀다.

아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주는 게 좋아 동화 구연 강의를 들었고 3급 자격증까지 땄다. 작은도서관에서 동화 구연 봉사도 한다.

지난해에는 울산시설공단이 모집한 합창단 오디션에 도전해 합격했다. 주요 행사나 대회마다 나가 노래를 부르며 즐긴다. 여기에다 인형극까지 덤으로 배우며 또 봉사할 수 있다며 행복해한다.

김씨는 "인형극을 연습하고 교육받는 시간 순간순간이 모두 좋고 행복하다"며 "새로운 사람도 사귀고, 저를 위해 살면서 남까지 도우니 큰 보람"이라고 환하게 웃었다.


김영숙씨도 지난해 초등학교를 나오기 전부터 퇴직 후 무엇을 할지 오랫동안 고민했다. 그래서 일찌감치 일본어 공부도 시작했고 '그린리더'라는 환경봉사단체 회원으로도 활동했다.

최근에는 오카리나도 배우고, 커피에 대한 궁금증에서 출발해 바리스타 자격증도 땄다.

그는 "퇴직하면 친구 만들기 프로젝트를 하겠다고 기획했는데, 봉사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이 좋다"며 "일본어와 오카리나를 더 열심히 배워 많이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고 했다.

열일 제쳐놓고 인형극 봉사 모임 회장과 총무를 맡은 류두이씨와 박영희씨는 "봉사도 건강해야 할 수 있는 만큼 준비된 은퇴, 준비된 봉사를 해야 한다"며 "남을 위한 봉사를 하면서 자신도 행복하다면 더 바랄 게 없다"고 입을 모았다.

you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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