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지원체계 확립·교육권 보장·다문화 수용성 확대 등 약속
선거운동 때 '무지개유세단' 활약…이주민 지지 선언도 잇따라
<※ 편집자 주 =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55일이 지났습니다. 촛불민심의 토대 위에 세워진 정권인 만큼 그 어느 때보다 개혁과 사회 통합을 바라는 국민의 열망이 뜨겁습니다. 이주민과 다문화 가족들도 대통령의 가치관과 공약대로 모든 사람이 존중받고 차별이 없는 사회가 앞당겨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다문화 분야에 관한 문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을 점검하고 새 정부의 과제를 짚어보는 기획기사 3꼭지를 마련했습니다.>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제19대 대통령선거 유세전이 한창이던 지난 4월 26일. 경기도 안산시 원곡동의 다문화거리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연호하며 '적폐 청산'과 '국민 통합'을 외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들 유세단의 면면은 한국인과 달랐고 선거 구호의 한국어 발음도 다소 어눌했다.
중국·러시아·베트남·필리핀·몽골·네팔·키르기스스탄 등 20여 개국 출신 귀화자 40여 명으로 꾸려진 '무지개 유세단'은 안산을 시작으로 충남 천안, 전북 전주, 광주광역시, 전남 광양, 울산, 경남 김해, 서울, 인천, 강원도 원주 등지를 돌며 40차례에 걸쳐 거리 유세를 펼쳤다.
이처럼 이주민들이 조직적으로 선거운동에 나선 것은 전례가 없었던 일이다. 앞서 4월 22일 국회 정론관에서는 16개국 출신 귀화인 50여 명이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들어가려는 문재인 후보의 정책은 모든 이주민의 바람"이라며 지지를 선언했고, 경남·대전 등 각지 이주민과 다문화 관련 단체 등의 지지 선언도 잇따랐다.
무지개 유세단을 조직한 강신성 더불어민주당 다문화위원장은 "박근혜 정부 시절 각종 특혜와 불평등을 지켜본 이주민들이 특권과 반칙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민주당의 정책과 문 후보의 의지에 공감해 지지를 선언한 것으로 풀이된다"면서 "특히 공동체의 당당한 일원으로서 한국 사회의 발전에 뭔가 기여하고 싶다는 열망이 이들을 거리 유세에 나서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문 대통령 "다문화가정은 소중한 자산"
후보 시절이던 3월 4일 문 대통령은 코리아평화네트워크 주최 국민대통합 포럼에서 "다문화가정은 우리나라의 소중한 자산"이라며 "대한민국 품에 안긴 다민족과 이주민들이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정가나 관가에서는 문 대통령이 오랜 기간 인권변호사로 활동해 결혼이주여성, 이주노동자, 다문화가정 자녀, 난민 등의 인권에도 관심이 많을 것이라며 다문화가정이나 이주민을 위한 정책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한다.
2006년 4월 노무현 정부가 '결혼이민자 가족의 사회통합 지원대책'을 발표하며 다문화정책을 본격적으로 시행하고 나섰을 때 문 대통령이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었던 점을 들어 "참여 정부를 계승한다고 밝힌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 때보다 적극적으로 다문화정책을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하는 사람도 많다.
다문화정책 주무 부처인 여성가족부의 장관 후보로 지명된 정현백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와 청와대 여성가족비서관에 내정된 은수미 전 국회의원이 모두 여성운동과 노동운동에 앞장선 인물이라는 점도 새 정부가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고 평등과 정의를 실현하는 차원에서 다문화정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것으로 보는 전망에 힘을 싣는다.
다만 2006년 이후 정부의 다문화정책 기조가 흔들린 적이 거의 없었고 주요 이슈에 관해 여야의 이견이 많지 않았다는 점에서 기존 정책 방향이나 중점 과제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으리라고 보는 전문가도 있다.
◇ 결혼이민자 종합지원·다문화 수용성 교육확대
문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 내놓은 공약집에서 다문화정책은 ▲결혼이민자 정착 및 인권 보호를 위한 종합지원체계 확립 ▲다문화가족 자녀 학습 및 정서 지원을 위한 '생활-학습 돌봄 멘토링 사업' 실시 ▲다문화가족 자녀의 교육권 보장을 위해 특별학급과 대안학교 지원, 다문화 교육에 대한 교과 개발 및 교사 연수 실시 ▲국민 대상 다문화 수용성 교육 내실화 및 확대 등 4가지다. 이와 별도로 농업정책 분야에서 '이주여성 농어업인 후견인제 등 다문화가정 지원정책 확대'도 약속했다.
그동안 다문화가정, 혹은 이주민에 관해서는 여성가족부 말고도 법무부, 고용노동부, 교육부, 문화관광부, 농수산식품부 등의 부처가 각기 지원 업무를 펼쳐왔다. 이에 따라 컨트롤 타워의 부재로 업무 중복 현상이 나타나거나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공약집은 그 폐해를 막기 위한 컨트롤 타워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대신 결혼이민자의 종합지원체계를 확립하겠다는 표현으로 부처 간 업무 조정에 대한 추진 의지를 밝히고 있다.
다문화 자녀들을 위한 멘토링과 교육에 무게를 둔 것은 이들이 건강한 공동체의 일원으로 성장하는 것이 사회의 공존과 화합을 도모하고 국가의 발전을 기약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2000년대 들어 국제결혼이 집중적으로 이뤄진 이후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다문화가정 자녀들이 속속 학령기에 접어든 추세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다문화 수용성을 높이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이자 시대적 흐름이다. 사회 일각의 반다문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세계시민교육을 강화하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 정신을 함양하는 것이 국가적 과제로 대두한 것이다.
이주여성 농어업인 후견인제는 이미 각 지역에서 시행되고 있는 제도이긴 하지만 새 정부의 지방 분권과 국토 균형 발전, 양성평등 등의 기조 아래 확대를 추진하기로 한 것이라고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소통실은 설명한다.
◇ 여가부 장관 임명 후 정책 방향 구체화할 듯
현재로써는 공약집에 있는 내용 말고는 새 정부의 다문화정책 방향을 가늠할 구체적인 밑그림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강신성 위원장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여러 지역의 다양한 이주민과 다문화 관련 종사자들을 만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이민청 설립'이나 '헌법에 다문화인의 권리 명시' 등의 주장과 요구가 쏟아졌다"면서 "우선 공약집에는 일부만 넣었지만, 앞으로도 이분들과 긴밀히 논의하고 관계 부처와 야당 등과 협의해 정책과 입법 등에 적극적으로 반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사회분과에서 활동하고 있는 오태규 자문위원은 "우리 분과에서 사회 전반의 국정 과제를 점검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다문화정책에 관해 검토하거나 논의한 것은 없고 앞으로도 특별한 제안이나 의견을 제출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여성가족부의 한 간부는 "현재 신임 장관의 임명 절차가 진행되고 있어 부처의 입장을 말할 형편이 되지 않는다"면서 "대통령 공약과 국정기획자문위의 제언 등을 토대로 새 정부의 정책 기조와 우선순위가 마련되면 그에 맞춰 신임 장관이 다문화정책 청사진을 펼쳐 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ee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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