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대부분 다문화 공약 몰라" "다문화 통합정책 마련해야"
"수요자 맞춤형 지원체계 절실" "단순 지원, 낙인효과 우려"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우리나라로 귀화한 이주민, 다문화 분야 종사자, 전문가 등은 새 정부의 다문화정책에 어떤 기대를 품고 있을까.
각계의 주요 인사들로부터 문재인 대통령 후보 공약에 대한 평가와 새 정부에 바라는 점 등을 들어봤다.
◇ 이자스민 전 새누리당 국회의원 = 결혼이주여성의 증가 속도가 둔화하고 다문화가정 자녀들의 평균 연령이 높아져서인지 최근 몇 년 사이에 정부의 다문화정책이 후퇴한 느낌이고 국민의 관심도 떨어진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다문화정책 공약을 내놓았다고는 하지만 선거운동 기간 적극적으로 이슈화하지 않았고 언론에서도 잘 다루지 않아 대부분 잘 모른다.
대통령의 공약은 모두 시의적절한 것이긴 하나 사실상 이전 정부에서 계속 추진해온 것이기도 하다. 결혼이주여성을 비롯한 이주민들이 지속해서 요구해온 것은 이민청을 신설하든가 대통령 직속기구로 다문화정책에 관한 컨트롤 타워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내가 19대 국회에 있을 때도 틈날 때마다 이를 주장했으나 실현되지 못했다. 각 부처에 흩어진 이주민 관련 정책을 한군데로 모으든가 그렇지 않더라도 확실하게 교통정리를 해야 한다.
다문화 자녀 학습과 정서를 위한 돌봄 멘토링 사업이나 특별학급·대안학교 지원은 적절한 공약이라고 본다. 가장 세심한 배려와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대상은 한국어도 서툴고 문화적 이질감도 심한 중도입국 청소년들이다. 일반 국민은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자녀들과 중도입국 청소년을 구분하지 못한다. 만일 이들이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문제를 일으키면 다문화 자녀 전체에 대한 선입관이 나빠질 것이다.
다문화가정의 이혼율이 높아 아이를 혼자 키우는 결혼이주여성이 많다. 생활고 등에 시달려 아이를 친정(모국)으로 보내기도 한다. 결혼이주여성이 자립하지 못하면 자녀 교육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질 우려가 크다. 이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거나 대학에 들어간 다문화 자녀도 많다. 자녀 성장주기에 따른 단계별 지원과 다양한 사례에 맞춘 구체적인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
◇ 신숙자 한국다문화가족지원센터협의회장(인천 강화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 = 정부의 다문화가족 지원정책이 결혼이주여성의 안정된 정착에 기여해온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이제는 결혼이주여성의 노후 문제에도 대비해야 하고 중도입국 자녀, 외국인 유학생, 탈북자, 고려인 동포 등 다양한 사례를 포괄할 수 있는 다문화 통합정책을 마련할 때다.
각 부처와 지자체에 분산된 다문화가족 지원 위주의 정책에서 탈피해 다문화 로드맵과 함께 정부 컨트롤 타워를 만들고 미래를 대비해 일관성 있게 정책을 밀고 나가야 한다. 현재 정부의 다문화정책 담당 부서는 여성가족부 청소년가족정책실 가족정책관 아래 다문화가족정책과와 다문화가족지원과에 불과하다. 이를 최소한 다문화정책실로 격상시켜야 한다.
정부가 지난해부터 본격 추진하고 있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와 건강가정지원센터의 통합은 문제가 많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다문화가족지원법의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설치 기준을 삭제해 건강가정지원법에 편입시키려는 개정안도 폐기돼야 마땅하다. 보건복지부 산하기관 사회복지사들보다 열악한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종사자들의 처우도 개선이 시급하다.
전국의 218개 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다양한 가치와 시선이 존중받는 사회의 기반으로 통일 후 2천500만 북한 동포를 지원하고 끌어가야 할 준비된 자산이다. 다문화라는 말이 사라지면 다문화가족을 지원하며 쌓은 경험과 노하우가 사장될 뿐 아니라 아직도 사회적 약자인 다문화가족이 배려받기 어려워진다.
◇ 권택명 한국펄벅재단 상임이사 = 정부가 다문화정책을 시행한 지 10년을 넘기는 동안 이제는 주요 현안을 대부분 짚었고 나아가야 할 방향도 어느 정도 정립했다고 본다. 다문화정책에 관해서는 그동안 여야의 견해차가 크지 않아 새 정부 들어서도 기조가 크게 바뀔 것은 없다고 본다.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도 지금까지 공감대를 이뤄온 범위 안에서 중점을 두어야 할 과제를 제시한 것으로 판단한다.
우리 국민 대부분은 차이를 인정하고 이주민을 포용하는 열린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당위와 현실의 괴리를 느낄 때가 많다. 더욱이 다문화가정의 사례가 사람마다 달라 포괄적인 접근보다는 구체적인 적용이 중요하다.
한국에 온 지 10년이 넘은 결혼이주여성이 절반에 육박하다 보니 남편과 사별하거나 이혼한 사람, 별거 중인 사람도 적지 않다. 반면에 열심히 노력해 모범적으로 적응하는 사람도 있다. 부지런히 다문화가정 지원 프로그램을 찾아다니며 혜택을 많이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보 부족이나 교통 불편 등으로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사람도 있다.
이 모든 사람에게 각각 맞춤형 지원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해도 여러 그룹으로 나눠 그에 맞는 지원체계를 갖추는 것이 절실하다. 그러려면 중앙 정부보다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새 정부가 지방 분권을 약속한 만큼 다문화 분야에서도 지자체에 과감하게 권한을 이양하고 관련 인력을 늘려주기 바란다.
주변의 성공 사례를 보면 본인의 의지와 노력 말고도 가족과 이웃, 사회봉사자들의 이해와 지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혼이주여성의 남편과 시부모를 비롯해 교사, 학생,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다문화 이해교육과 체험 기회를 대폭 늘려야 한다.
◇ 김환학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 = 다문화가족지원법은 2008년 3월 제정돼 지금까지의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결혼이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도 이미 20여 년이 지났다. 1990년대 들어온 결혼이주여성의 상당수는 가계의 주도권을 지니고 있다. 국가가 여전히 후견인의 지위에서 다문화가족을 상대로 지원하는 정책과 법률의 틀을 바꿔야 한다.
다문화가족을 단순 지원하는 방식은 '낙인 효과'라는 부작용을 낳을 우려가 크다. 보편적 복지제도를 통해 다문화가족의 자발적인 사회통합 동참을 유도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 국제결혼을 내국인 간의 혼인과 달리 취급해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법률적으로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다만 이혼이나 사별 후 재혼한 결혼이민자가 출신국에서 데려온 중도입국 자녀는 재한 외국인 가운데 가장 취약한 집단인데도 방치되고 있다. 이들의 사회 적응을 위한 배려와 지원의 필요성은 인정된다.
국제적 기준에 따르면 가족을 동반하지 않은 상태에서 해외에서 노동하는 것은 3년을 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고용허가제는 4년 10개월에 한 차례 연장할 수 있다. 이런 규정은 매우 비인간적일 뿐 아니라 내국인의 노동조건도 악화시키고 있으므로 한시바삐 개정해야 한다. 경제협력협정(EPA)의 틀에서 국내 청년도 외국에 나가 취업이나 창업을 할 수 있도록 쌍방향 인력 교류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hee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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