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일 신부 '라틴어 수업' 출간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한동일 신부는 동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바티칸 대법원(로타 로마나)의 변호사가 된 인물이다. 로타 로마나의 변호사가 되려면 교회법은 물론 라틴어와 기타 유럽어를 잘 구사해야 한다. 라틴어로 진행되는 사법연수원 3년 과정도 이수해야 한다.
이런 모든 과정을 거쳐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가 된 한 신부는 2010년부터 지난해 1학기까지 서강대에서 라틴어 강의를 했다. 수강생 24명으로 시작된 강의는 입소문을 타면서 세 번째 학기부터는 200명이 넘는 학생이 듣는 인기 수업이 됐다.
라틴어 강의지만 단순히 어학 수업에 그치지 않고 라틴어에서 파생한 유럽 언어 이야기부터 그리스·로마 시대 문화와 사회 제도, 법, 종교 등 광범위한 인문지식을 이탈리아 유학 시절 경험담과 함께 들려준 것이 인기 비결이었다.
신간 '라틴어 수업'(흐름출판 펴냄)은 '명강의'로 소문났던 한 신부의 라틴어 강의를 글로 옮긴 책이다. 한 신부는 라틴어 표현들을 화두 삼아 삶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첫 수업은 휴강입니다'(Prima schola alba est)라는 표현은 로마 시대 교사가 수업 첫날 하는 말이다. 한 신부는 첫 수업에서 이 표현과 함께 로마 시대의 학교 제도에 대해 소개한 뒤 휴강을 선언하고 교실 밖으로 나가 봄날의 아지랑이를 보라는 과제를 내준다.
아지랑이를 뜻하는 라틴어 '네불라'(nebula)는 '보잘것없는 사람', '허풍쟁'이라는 뜻의 '네불로'(nebulo)와 '안개 낀, 희미한'을 뜻하는 '네불로수스'(nebulosus)에서 파생한 단어다. 네불라에는 아지랑이라는 뜻 외에도 '보잘것없는 것', '오리무중'이라는 뜻도 있다. 한 교수는 네불라의 유래를 설명하며 '보잘것없는 것'과 '허풍'과 같은 마음의 현상을 들여다보라고 권한다.
'모든 동물은 성교(결합) 후에 우울하다'(Post coitum omne animal triste est)는 표현에 대한 해석도 흥미롭다. 그리스 출신의 의사이자 철학자인 갈레노스 클라우디오스가 한 이 표현은 '열정적으로 고대하던 순간이 격렬하게 지나가고 나면 인간은 자기 능력 밖에 있는 더 큰 무엇을 놓치고 말았다는 허무함을 느낀다'는 의미다. 한 교수는 이 표현을 소개하며 유학 시절 라틴어와 이탈리아어가 섞인 강의를 이해하지 못해 절망했던 경험을 들려준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공부든, 사랑이든, 무엇이든 목표로 하는 순간을 위해 노력하고 그 뒤에 찾아오는 우울감을 한 번 경험해보라며 격려한다.
책은 이런 식으로 28개 라틴어 표현을 중심으로 한 강의 내용을 담았다. 책 말미에는 한 신부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이 책 출간을 기념해 보내온 편지들이 실렸다. 312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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