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 '넘버 3' 아동성범죄 기소…바티칸까지 번진 치부(종합)

입력 2017-06-30 02:28  

교황청 '넘버 3' 아동성범죄 기소…바티칸까지 번진 치부(종합)

호주 경찰의 펠 추기경 기소에 바티칸 '술렁'

(바티칸시티=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교황청 서열 3위로 꼽히는 조지 펠(76) 추기경이 과거에 아동성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모국 호주에서 기소되며 가톨릭 교단의 '치부'로 인식돼온 아동성범죄 문제가 가톨릭 심장부인 바티칸까지 침범했다.

교황청 공보실은 호주 빅토리아주 경찰이 펠 추기경을 복수의 성범죄 혐의로 기소했다는 호주 언론 보도가 나온 직후인 29일 새벽 4시30분(현지시간)에 출입 기자단에 이메일을 보내 펠 추기경이 이날 오전 8시30분 긴급 기자 회견을 한다고 공지했다.

극히 이례적으로 새벽 시간 대에 교황청 공보실이 발 빠르게 움직인 것은 그만큼 교황청 내부에서도 이번 사안을 심각하게 보고 있음을 방증한다.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낸 펠 추기경은 "이번 일은 무자비한 인격살인"이라고 규정하며 결백을 호소했다.

젊은 시절 호주 미식축구 선수로도 뛴 신장 2m의 당당한 체격의 펠 추기경은 이날도 직설적이고, 거침 없는 평소의 스타일대로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호주 재판정에 서는 날이 어서 오기를 고대한다"고 말하며 자신의 혐의를 적극적으로 부인했다.

교황청 역시 "이번 소식에 유감"이라면서도 "프란치스코 교황은 펠 추기경이 교황청 재정 개혁과정에서 보여준 정직성과 헌신에 감사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은 별도의 성명을 내 궁지에 몰린 펠 추기경에 대한 간접적 지지를 표명했다.

1966년 사제서품을 받은 뒤 멜버른 대주교, 시드니 대주교를 역임한 호주를 대표하는 성직자인 펠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교황청의 재정 개혁을 추진할 적임자로 발탁, 2014년 이래 교황청 재무원장으로 바티칸에서 일해왔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3년 즉위 후 교황청의 재정 및 구조 개혁을 위한 자문 역할을 맡기기 위해 임명한 추기경 9명으로 구성된 추기경자문단의 일원이기도 해 교황청 개혁 노력에 있어 핵심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교황청은 일단 펠 추기경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히긴 했으나 프란치스코 교황의 측근이자, 교황청 최고위 인사인 그가 다른 일도 아닌 교황청이 근절을 선언한 아동 성범죄 혐의로 결국 기소되자 당혹스러운 처지가 됐다.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무죄 추정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는 것이 교황청의 그동안의 공식적인 입장이지만, 교황청은 이번 일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도 적지 않은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하며 사건의 여파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성직자들의 교회 내 아동 성추행 사실과 이를 오랫동안 은폐해온 교회 내부의 문제가 전 세계 곳곳에서 드러나며 가톨릭에 대한 신뢰도가 크게 떨어진 상태에서 2013년 즉위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취임 이후 아동 성범죄에 대한 무관용 원칙을 천명하며 아동보호위원회를 창설, 적극적인 문제 해결에 나섰다.

그럼에도, 아동 성추행 엄단과 근절을 위한 교황청의 노력이 교황청 내 고위 관계자 등 일부 인사의 항명에 부딪혀 지지부진하다는 지적을 받아온 터에 교황이 직접 발탁해 교황청 요직에 앉힌 펠 추기경마저 재판 결과 혐의가 입증될 경우 가톨릭 전체의 이미지 손상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교황과 국무원장에 이어 교황청 서열 3위인 펠 추기경의 혐의가 확정되면 그 후폭풍은 지금까지와 비교할 수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아울러, 펠 추기경이 개혁에 저항하는 기존 세력의 끈질긴 저항에도 불구하고, 교황청의 재정 개혁을 진두지휘해 온 인물이라 교황청의 개혁 작업에도 차질이 우려되고 있다.

반면, 교황청의 상당수 관료는 펠 추기경의 퇴장을 은근히 반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펠 추기경이 교황청 재정 개혁을 추진하며 교황청 관료조직인 쿠리아의 적대감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은 교황청 내 공공연한 비밀로 통한다.

교조적이고, 야심이 큰 것으로 알려진 펠 추기경은 교황의 측근으로 분류되지만, 이혼하거나 재혼한 사람도 상황에 따라 성체 성사에 참여할 수 있음을 시사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침에 반대하는 등 성향이나 철학 면에서는 프란치스코 교황과는 상당히 다른 것으로 평가된다.

한편, 가톨릭 교회 내부의 성학대와 관련한 책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소서'의 저자인 제이슨 베리는 로이터에 "성범죄 사제에 대한 소극적 대처라는 전임 두 교황을 얼룩지게 한 아프고, 고질적인 추문의 늪에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빠졌다"며 "교황이 전면적 변화를 추진하지 않는다면, 위기가 더 악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가톨릭의 치부가 된 사제들의 성학대 추문은 2002년 미국 보스턴 교구가 아동 성범죄를 저지른 사제들을 파문시키거나 징계하지 않고, 단순히 새로운 직책이나 교구로 전보 조치한 것이 알려지며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오랫동안 침묵하던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꺼내기 시작하며 현재까지 미국, 아일랜드, 중남미 등 세계 곳곳에서 수 천 건의 피해 사례가 보고됐다.

ykhyun14@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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