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감정업자 위작 다툼서 입증책임 삭제…경매업도 등록제로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문화체육관광부가 미술품 위작을 뿌리 뽑고자 추진 중인 '미술품 유통에 관한 법률안'(이하 미술품 유통법)이 정부입법 과정에서 대폭 완화됐다.
3일 문체부 등에 따르면 '미술품 유통법'에서 위작 손해배상을 놓고 유통업자와 감정업자에 입증책임을 지우려던 조항이 제외됐다. 경매업을 허가제로 규정하려던 것도 등록제로 완화했다.
이는 국무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가 규제가 과한 측면이 있다며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앞서 문체부는 지난해 10월 ▲ 화랑업 등록제·경매업 허가제·기타 판매업 신고제 ▲ 감정업 등록제 ▲ 유통업자의 계약서·보증서 교부 및 거래 이력 관리 의무 ▲ 국립감정연구원 설립 등을 골자로 한 '미술품 유통법'을 발표했다.
기존 법안에는 위작으로 인한 다툼에서 유통업자나 감정업자가 고의나 과실이 없었다는 점을 증명하지 않으면 손해배상 책임을 면할 수 없도록 하는 조항이 존재했다.
이는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입증책임을 구매자가 아닌 판매자가 지도록 전환했다는 의미가 있었다. 지금은 위작을 사들인 사람이 상대의 불법 행위가 있었음을 입증해야 한다.
미술계 일각에서는 이 조항이 유통업자와 감정업자의 활동을 위축시켜 미술 시장의 침체를 심화할 우려가 있다며 크게 반발했다. 규제심사 과정에서도 해당 규정이 과도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 나옴에 따라 결국 제외됐다.
미술계는 손해배상 입증책임 조항이 제외된 것을 반기면서도 '미술품 유통법' 자체가 위작 근절이 아닌 국가의 통제를 강화하려는 성격이 강하다며 비판했다.
미술계 한 관계자는 "기존 법안대로 하면 유통·감정업자가 사실상 무조건 책임을 지게끔 되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다들 유통도 감정도 안 하려고 할 테고 결국 미술 시장이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시장에서 작품이 계속 거래되면서 위작도 자연히 솎아내게 되는 것"이라면서 "그걸 국가가 유통법을 만들어 통제하겠다고 하면 자율적인 정화가 어렵게 된다"고 지적했다.
화랑들은 거래 이력 관리 의무 조항이 유지된 것에도 불만을 드러낸다. '자체적으로 이력을 관리해야 한다'는 규정은 신고제보다는 한결 낮은 규제이지만, 신분 노출을 꺼리는 고객들이 작품 구매에 소극적으로 돌아설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서울 강남의 한 화랑주는 "소규모 화랑들은 현금 거래가 많아서 거래 이력 관리를 체계적으로 하지 않고 있다고 보면 된다"면서 "자체적인 관리라고 나와 있어도 관리한다고 하면 사는 분들이 위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술품 유통법'은 천경자·이우환 등의 위작 논란이 가열되자 문체부가 위작 유통 근절과 시장 투명성 강화, 건전한 거래 질서 확립을 위해 내놓았다.
이 법안은 애초 올 8월 시행목표로 추진됐으나 작년 말 불거진 문체부 '블랙리스트' 사태 속에서 관련 절차가 늦어졌다. 문체부는 내달 법안을 국회에 제출, 올 연말까지 입법 절차를 마무리한 뒤 내년 중에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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