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빵으로 구웠던 이웃사랑, 이제는 구슬로 엮다

입력 2017-07-09 11:30  

[사람들] 빵으로 구웠던 이웃사랑, 이제는 구슬로 엮다

'빵 아저씨'에서 '구슬 할아버지'된 춘천 거주 88세 김교환씨

하루 팔찌 20개 만들어 이웃 선물…"100세까지 만들고 싶어"




(춘천=연합뉴스) 박영서 기자 = 출출한 오후 고소한 빵 하나에 듬뿍 담아 전했던 이웃사랑을 이제는 구슬을 엮어 전하는 80대 할아버지가 있다.

강원 춘천시 후평동에 사는 88세 '구슬 할아버지' 김교환씨다.

8일 "조그맣게 구슬 공장을 차려놨다"는 김 할아버지의 집을 찾았다.

방 안으로 들어서자 김 할아버지 말대로 형광 아크릴 수납장 안은 구멍이 뚫린 구슬, 진주, 크리스털, 원석 등 다양한 크기의 각종 재료가 가득했다.

김 할아버지는 방구석에 놓인 컴퓨터용 책상을 작업대라고 소개했다.

책상 위에는 1㎜짜리 구슬이 흙처럼 쌓여 있었고 한쪽에는 실리콘 줄이 묶인 바늘 5개, 펜치, 가위, 조그마한 스탠드 하나가 놓여있었다.

의자에 앉아 바늘로 구슬 더미 속을 몇 차례 '스윽∼'하고 넣고 빼기를 반복하자 실리콘 줄에 구슬 수십 개가 끼워졌다.

김 할아버지는 5분도 안 돼 팔찌 하나를 '뚝딱' 완성했다.

자신의 양 손목에 8개나 차고 있는 팔찌와 똑같은 팔찌였다.




백발이 성성한 그가 '구슬 공장'에서 만드는 물건은 팔찌, 목걸이, 반지 등 액세서리다.

정확히 말하면 '비즈공예'라고 불리는 웰빙 취미 중 하나다.

상대적으로 작업시간이 짧은 팔찌가 할아버지의 '주 종목'이다.

책상 옆 벽에는 할아버지가 알알이 엮어 만든 액세서리가 가득 걸려있다.

바닥에 무언가 자꾸 밟혀 고개를 숙여 보니 장판 색과 비슷한 노란색의 '보호색'을 띠고 있는 작은 구슬들이 떨어져 있었다.

그는 아내 이순주(79) 씨와 함께 자신이 만든 액세서리를 이웃 주민들에게 무료로 나눠주는 일을 하고 있다.

인근 노인복지회관, 아파트 노인정은 물론 시내 한복판과 버스정류장에서도 자신이 정성 들여 만든 팔찌를 건넨다.

처음에는 경계심을 가졌던 사람들도 설명을 듣고는 어느새 손목에 팔찌를 하나둘 채운다.

"사람들이 내가 만든 팔찌를 받고 좋아하면 내 마음이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그렇게 좋아하는데 내가 안 만들 수가 없더라고. 아주 신바람이 나요."

봉사 이유를 묻자 김 할아버지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답했다. 한껏 치솟은 광대에는 뿌듯함이 묻어나왔다.




할아버지가 팔찌를 만들기 시작한 건 2년 전이다.

지금은 '구슬 할아버지'로 불리지만 10년 전만 해도 할아버지 별명은 '빵 아저씨'였다.

'지금도 몸만 괜찮으면 빵을 만들고 싶다'는 그는 2006년부터 5년여간 빵을 구워 이웃 노인들에게 나눠줬다.

1960년대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고엽제 후유증으로 다리가 불편했지만, 젊은 시절 20여 년간 제과점을 했던 솜씨를 살려 노년에 보람있는 일을 하며 여생을 보내고 싶어서였다.

매월 받는 30만원의 고엽제 피해 보상금으로 직접 크림, 단팥을 만들고 도넛 빵 40여 개를 구워 노인정 7∼8곳에 나눠주며 이웃사랑을 실천했다.

한 평(3.3㎡)도 채 안 되는 작업장에서 구웠던 이웃사랑은 허리가 아파 더는 할 수 없게 됐다.

할아버지는 두 차례나 허리 수술을 받아야 했다.

수술을 받고도 빵을 만들고 싶어 했지만, 아내와 자식들은 할아버지의 건강을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어 그를 뜯어말렸다.

그러던 2015년 어느 날 춘천 시내 지하상가를 지나던 할아버지의 눈에 액세서리 가게가 들어왔다.

만물박사로 불릴 정도로 손재주가 좋은 할아버지는 구슬과 줄을 사서는 집에 와서 직접 팔찌를 만들었다.

줄에다가 구슬을 끼우는 일까지는 어떻게 성공했지만, 국수처럼 얇은 줄의 마지막 매듭을 묶는 게 그렇게 어려울 수 없었다.

매듭이 풀어져 구슬이 쏟아지기를 수차례 반복하자 납땜인두기까지 사용해 겨우 매듭을 짓기도 했다.

구슬땀 흘러가며 만든 팔찌를 이웃에게 나눠주면서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다시 웃음꽃이 폈다.

지금은 재료를 주로 택배로 받지만, 직접 서울 남대문까지 가 재료를 사 오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아침 일찍이 집사람한테는 노인복지관에 간다고 하고서는 ITX 타고 남대문까지 갔었어. 직접 가서 봐야 내 마음에 드는 걸 고를 수 있어서 그랬지"라며 회상했다.




할아버지가 하루에 만들 수 있는 팔찌는 20개 남짓. 목걸이만 만들면 10개 정도다.

백내장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음에도 가까운 곳, 먼 곳 가리지 않고 작은 글자를 또렷이 볼 정도로 시력이 좋다.

먼 곳은 시력검사표 맨 아래 바로 위(1.5)까지 볼 수 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복지관까지 걸어서 40분이나 되는 거리를 매일 걷는다. 이웃사랑을 향한 그의 의지가 건강유지 비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정하다.

주로 새벽이나 저녁에 팔찌를 만들고, 낮에는 이곳저곳을 찾아 사랑을 전한다.

병원 간호사부터 시내에 엄마 손을 잡고 나온 어린아이, 복지관 할머니들까지 그의 팔찌를 받은 사람을 셀 수 없을 정도다.

액세서리로 장식한 작은 가방에 팔찌를 한가득 넣어 나눠주다 보면 금세 동난다. 남은 적이 없다.

한사람이 두 개, 세 개를 가져가도 개의치 않는다.

"주문이 밀려서 죽을 때까지 만들어도 다 못 만들 것 같아. 지금이 88살이니까 적어도 100살까지 12년은 더 만들었으면 좋겠어."

할아버지의 바람이다.

할아버지는 자신과 같은 봉사자가 2∼3명 더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드러냈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에게 행복을 선물할 수 있어서다.

투박한 할아버지의 손은 오늘도 쉼 없이 이웃사랑을 엮는다.

conany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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