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强서 '주도적 역할' 지지 얻어내…"중심 잡고 이견 조율"
北대응 놓고 '더 강한 압박'과 '대화 통한 평화적 해결' 원칙
미·일에는 '평화적 해결' 강조…중·러에는 '역할론' 압박
미·일 VS 중·러 대치전선 속 남북관계 '운전석' 굳히기 과제
靑 관계자 "더이상 '코리아 패싱' 안 나올 정도로 존재감 확인"
(함부르크=연합뉴스) 노효동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9일(이하 독일 현지시간) 독일 공식 방문과 함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한 4박6일간의 독일방문 일정을 마무리했다.
지난주 첫 해외방문이었던 3박5일간의 방미일정까지 감안하면 11일간에 걸친 '외교대장정'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숨 돌릴틈 없는 강행군으로 이어진 문 대통령의 이번 해외순방은 양자와 다자를 아울러 반년 이상 '방치'돼온 외교공백을 메우고 주요국 정상들과의 개인적 신뢰관계를 쌓는다는 당초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했다고 볼 수 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9일 "더이상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한국의 존재감을 보여줬다"며 "문 대통령이 주요국 정상들과 허심탄회하게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관계를 맺은 것도 성과"라고 말했다.
이번 순방의 더욱 중요한 성과는 한반도 최대 현안인 북한 핵·미사일 문제를 한국이 주도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 외교적 프로세스의 첫발을 뗀 것이다.
동북아 역내질서를 이끄는 한반도주변 4강(强), 즉 미·중·일·러 모두로부터 한반도 문제를 다뤄나가는 데 있어 한국의 주도적 역할에 대한 지지를 끌어냈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표방하는 '과감하고 근원적 해결'을 추구하는 데 있어 외교적 자산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지난 6일 내놓은 '베를린 구상'은 중장기적으로 한반도 평화를 달성해내기 위한 기본 원칙과 제안을 집대성한 것으로서 국내외적으로 크게 주목받았다.
그러나 갈수록 심화하는 미·일 대(對) 중·러간 신(新)냉전적 구도속에서 문재인 정부의 접근법이 실효를 거두려면 남북대화 채널 복원과 북핵 6자회담 재개와 같은 외교적 프로세스를 주도적으로 만들어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한반도 주도권' 잡고 4强 사이 '중심잡기' = 한반도 주변4강을 비롯해 주요국들이 앞으로 한반도 문제를 다뤄나가는 데 있어 한국과 우선적으로 '협의'하도록 외교적 논의구조와 프로세스를 만들어낸 것이 가장 주요한 성과로 꼽힌다.
북핵 6자회담 당사국이면서도 정작 북핵 해법을 놓고 '동상이몽'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4강 사이에서 한국이 나름대로 중심을 잡고 이견을 조율해낼 수 있는 외교적 공간을 만들어내는 평가가 나온다.
다자 정상외교 무대인 G20 정상회의에서 북한 핵·미사일 도발이 관심주제로 논의 테이블에 오른 것도 문 대통령이 주도적으로 공론화를 꾀한 데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주요국들의 이 같은 공감대 속에서 한국은 북한 핵·미사일 문제에 대한 '압박'과 '대화'의 양 갈래 흐름 모두에서 이니셔티브를 쥘 여지가 생겼다고 볼 수 있다.
당장의 북한 도발에 대해 더 큰 제재와 압박을 가하되, 이는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복귀하도록 만드는 수단이며 궁극적으로는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을 달성한다는 '과감하고 근원적인 접근법'이 외교적으로 주효했다는 평가다.
이에 따라 제재와 압박에 무게를 둔 미국과 일본으로부터는 '평화적 해결'이라는 원칙을 이끌어냈고, 대화와 협상을 여전히 강조하는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로는 더 적극적으로 대북압박에 나서라고 촉구하는 전략을 펴게 됐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7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양자 정상회담은 물론이고 6일 저녁 한·미·일 3자 정상회동에서도 한반도 비핵화를 '평화적 방법'으로 달성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했고 이는 7일 오후 발표된 공동성명에 적시됐다.
반대로 지난 6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는 중국이 북한 핵·미사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큰 역할과 기여'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7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는 북한이 비핵화 협상 테이블로 돌아올 수 있도록 적극적인 역할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북한과 정치·경제적으로 유대를 맺고 있는 양국이 한층 적극적으로 대북 지렛대를 써달라는 주문이었다.
◇ '베를린 구상' 하이라이트 장식…중장기적 평화구상 제시 = 또 다른 주목할 성과는 한반도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큰 틀의 공감대를 주요국들 사이에 형성해낸 것이다.
한반도에서 물리적 충돌을 야기할 수 있는 군사적 옵션을 배제하고 경제적 제재를 중심으로 압박을 강화하되, 궁극적으로는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풀어나간다는 컨센서스를 끌어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순방의 최대 하이라이트였던 '베를린 구상'은 바로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우리 정부 주도로 해나가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지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른바 'G2'인 미·중이 한국이 '운전석'을 앉는 것을 지지하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은 북한을 향해 직접 '평화 프로세스'를 제시함으로써 한반도 문제를 확실히 주도해나가겠다는 뜻을 내보였다.
지난 6일 쾨르버재단 초청연설을 통해 제시한 구상의 핵심은 도발을 통한 국제적 고립이냐, 대화를 통한 밝은 미래냐의 '양자택일'을 압박하는 메시지였다.
북한이 '레드라인'을 향하는 도발의 길로 계속 갈 경우 국제사회와 함께 더 강도 높은 제재와 압박을 가할 것을 촉구하면서 북한이 핵·미사일을 포기하고 대화의 길로 돌아올 경우 역시 국제사회와 함께 적극 돕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북한 체제 보장과 흡수통일 배제 등 '대북 4대 불가원칙'을 제시하고 북한 비핵화와 북한이 희망하는 평화협정 체결을 포괄적으로 해결하는 '출구론'을 분명히 했다.
이는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 계승을 통한 평화'와 같은 5대 원칙과 함께 ▲이산가족 상봉 재개 ▲북한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군사분계선 적대행위 중단 ▲남북간 대화재개 등 4대 제안으로 한층 구체화됐다.
물론 이 같은 평화구상이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도발에 따른 현재의 제재국면과는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는데다 북한이 이를 현실적으로 수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한반도 상황을 주도적으로 관리하고 북한의 협상테이블 복귀를 견인해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미국으로부터 한반도의 주도권을 넘겨받음으로써 북한이 과거 '통미봉남'식으로 미국과의 직접 담판을 통해 통 큰 해결을 시도하려는 것을 차단하는 측면도 있다.
◇ 외교대치 전선속 남북관계 '운전석' 확보가 관건 = 그러나 이번 순방의 성과는 당장의 '현찰'이라기보다는 '어음'의 성격을 띠고 있어 국내적·외교적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그 의미가 퇴색될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대북제재 문제를 둘러싸고 미·일 대 북·중의 신냉적 대치구도가 가파라질 경우 우리 정부가 한반도 문제의 '운전석'을 확실히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문재인 정부가 당장 남북대화 채널을 복원해내면서 북핵 문제를 남북간에 풀 수 있는 틀을 마련해내고 북핵 6자회담과 같은 다자협의를 새롭게 가동하는 게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순방결과에 따라 앞으로 다각적 차원의 후속작업이 뒤따를 것"이라며 "남북간 대화 뿐만 아니라 다자적 채널이 필요하며 통일, 국방, 체육,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협력을 모색하는 노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rh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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