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카라∼이스탄불 450㎞ '정의 장정' 완주 집회에 수십만명 운집
'게지파크' 이후 최대 반정부성향 행사…野대표 "공포 벽 무너뜨렸다"
(이스탄불=연합뉴스) 하채림 특파원 = "사으! 후쿠크! 아달레트!"(권리,법, 정의!)
9일(현지시간) 오후 터키 이스탄불 동부 말테페 구역 마르마라해안도로는 흰색 티셔츠와 모자를 착용한 사람들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졌다.
티셔츠와 옷에는 붉은색으로 'Adalet'(아달레트)라는 글귀가 쓰였다. '정의'라는 뜻이다.
행사장으로 이동하는 군중은 한 목소리로 법과 정의, 인권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쳤다.
이날 말테페 해안공원에서는 터키 제1야당 '공화인민당'(CHP)이 주도한 '정의 장정'을 완주하는 집회가 열렸다.
정의 장정은 앙카라부터 이스탄불까지 450㎞를 24일간 도보로 행진하며 터키의 사법정의를 촉구하는 시위로,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CHP 대표가 지난달 15일 앞장을 섰다.
2년 전 터키 정보당국이 시리아 무장조직에 무기를 지원한다는 의혹을 폭로한 에니스 베르베로을루 의원에게 중형이 선고된 것이 시위 계기가 됐다.
이스탄불에 가까워질수록 행렬이 길어지고 여론이 관심이 고조됐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치력에 끌려가기 급급한 야당이 처음으로 정국을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야당은 이날 정의 장정 행사장 안팎에 200만명이 다녀갔다고 밝혔다.
맨눈으로 어림잡아 행사장 내부에는 10만 여명, 밖에도 그보다 훨씬 많은 인파가 모인 것으로 보였다.
2013년 '게지파크 시위' 이후 최대 규모 반정부 집회에 해당한다.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는 "우리는 공포의 벽을 무너뜨렸다"면서 "정의 장정의 마지막 날은 새로운 시작이요, 새로운 발걸음"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1인 지배 체제'와 (재미 이슬람학자) '귈렌' 모두 반대한다고 말하고, "누가 감히 천국과 같은 이 나라를 지옥으로 바꾸려 하느냐"며 에르도안 대통령을 겨냥했다.
정의 장정에 모인 군중은 지난해 쿠데타 저지 후 정부 주도의 대형 집회 때와 확연히 달랐다.
50대 이상 장년층과 노년층이 40대 이하 젊은 세대와 비슷할 정도로 많았다. 히잡을 착용한 여성은 드물었다.
'국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얼굴이 담긴 국기도 곳곳에 나부꼈다.
반(反)에르도안, 세속주의 정서와 아타튀르크에 대한 향수가 분출했다.
잔디밭에서 휴식을 취하던 60대 아흐메트·무스타파 아자튀르크 형제는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이대로 가다가는 이 나라에 희망이 없어질 것 같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나왔다"고 말했다.
동생인 무스타파(61)씨는 "정권이 쿠데타 세력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일반 국민마저 탄압하고 있다"면서 "시위를 해서 상황이 나아질지는 모르지만 어떻게든 변화를 만들어 내고자 나섰다"고 했다.
아타튀르크 얼굴 대신 클르츠다로을루 대표의 모습이 담긴 펼침막을 든 참가자도 드물게 눈에 띄었다.
터키 북동부 에르주룸 출신의 대학 졸업반 우푸크 이을마즈(24)씨는 "그가 이번 행진을 이끌지 않았느냐"면서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도 (에르도안 대통령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정의 장정이 여론의 공감을 얻은 것은 이것이 정치투쟁이 아니라 삶의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나나 친구들이 진학이나 취업에서 부당한 일을 겪고 있다"면서 "다음 세대까지 이런 일을 당하게 할 수는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에르도안 대통령을 비롯한 여당 지도부는 정의 행진과 이를 주도한 클르츠다로을루를 비판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앞서 "그들의 행진은 테러조직을 위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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