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빠진' 서방의 대중 인권압력…류샤오보 언급안한 G20
(선양=연합뉴스) 홍창진 특파원 = '팡리즈(方勵之·1936~2012), 웨이징성(魏京生·67), 류샤오보(劉曉波·61).'
세 인물은 중국의 반체제 인사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다른 게 있다면 팡리즈와 웨이징성은 미국이 중국에 강한 압박을 가해 자유의 몸이 됐다면, 류샤오보는 간암 말기로 투병하면서도 의지와는 반대로 중국에 갇혀 원하는 선진 의료진의 치료조차 못 받고 있다는 점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0일 류샤오보가 간암 말기라는 생사기로의 병마와 싸우면서 중국당국의 엄중한 감시에 시달리고 있지만, 지난 7∼8일 독일 함부르크에서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 지도자들로부터 아무런 공식적 언급을 받지 못했을 정도로 '관심 밖'이었다고 보도했다.
SCMP는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인권활동가인 류샤오보의 절망적인 처지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판다곰과 축구 대화 속에 파묻힐 정도로 중국 인권운동이 국제적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G20 정상회의에서는 물론 이 기간에 열린 주요 국가들의 양자 및 다자회담에서도 류샤오보 얘기는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
각국은 중국의 '심기'를 건드릴까 우려해 류샤오보 얘기는 일절 꺼내지 않았고, 무역·금융 등 경제 문제 논의에만 주력했다.
SCMP는 "이런 상황은 과거 인권투쟁을 벌이던 중국 인사들을 구명하려는 국제사회 압력에 귀기울이던 때와는 냉혹할 정도로 대조된다"고 꼬집었다.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의 배후로 지목됐던 중국의 반체제 물리학자인 고(故) 팡리즈(方勵之)가 같은 해 6월 5일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손님 자격으로 베이징(北京) 소재 주중 미대사관으로 옮겨져 13개월간 은신했다가 미국으로 망명한 것과 비교된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신문은 또 반체제 활동을 한 탓에 18년간 수감생활을 했던 정치범 웨이징성(魏京生)이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의 요청으로 1997년 가석방돼 강제 추방되는 형식으로 미국으로 갔던 사례를 거론했다.
현재 캘리포니아대학(UC리버사이드)의 비교문학·외국어 교수로서 1989년 톈안먼 사태 때 중국 당국의 대응을 기록한 '톈안먼 문서'를 공동 번역한 페리 링크는 "중국 정부에 대한 외국의 압력 효과가 감소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페리 교수는 류샤오보가 장기 징역형을 받는 계기가 됐던 '08헌장'을 번역한 인물이기도 하다. 08헌장은 공산당 일당체제 종식 등 중국의 민주개혁을 요구한 선언문이다.
인권단체 휴먼라이트워치(HRW) 아시아지부의 마야 왕 선임연구원은 "정치적 활동가들에 대한 부당한 처사를 계속 내버려둔다면 중국 정부가 고무될 수 있다"며 "G20 국가들이 공개적으로 류샤오보 석방을 압박하지 않으면 중국은 물론 어느 국가를 향해서든 인권을 위한 압력의 신뢰성을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가운데 SCMP는 세계 경제위기 시기에 중국이 국제사회를 상대로 경제력과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중국을 겨냥한 서방의 인권 압력이 크게 줄었다고 분석했다.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SOAS) 산하 중국연구소의 스티브 창 소장은 "중국 경제의 규모와 중요성 때문에 다른 나라들이 중국에 인권문제를 꺼내는 걸 조심스러워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그리스가 중국 인권 상황을 규탄하는 유럽연합(EU) 성명에 거부권을 행사했고, 노르웨이가 류샤오보 문제에 대해 언급을 회피한 것이 단적이 사례라고 SCMP는 전했다. 노벨위원회가 2010년 류샤오보에 노벨평화상을 준 것을 이유로 중국은 노르웨이에 외교적 압력을 가해 수년간 양국 간에 냉기류가 형성됐다가 근래 정상화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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