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학자 배철현 교수 '인간의 위대한 여정' 출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숭고한 원칙을 위해 순교하는 인간의 거룩한 행동이 단순히 이기적인 유전자로부터 생겨난 것이라고 주장하기에는 꽤나 허접하다."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가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으로 요약되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과 인간 진화의 핵심을 '이기적 유전자'로 본 리처드 도킨스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책을 출간했다.
우주가 탄생한 137억년 전부터 현생 인류가 출현해 활동한 1만년 전 사이에 벌어진 일을 여러 학문적 성과로 재구성한 '인간의 위대한 여정'(21세기북스)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언제부터 인간이 되었는가',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다.
인문학자인 저자는 먼저 과학 분야에서 큰 진전이 있었지만, 아직 명확하게 결론이 나지 않은 물음이 많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우주의 기원만 하더라도 빅뱅 이론에 모든 과학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며, 우주가 창조되기 전의 모습을 정확하게 아는 과학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생명의 근원도 정설(定說)은 없다. 자연발생설이 널리 퍼져 있으나, 무생물 물질이 어떻게 고차원의 생물로 진화했는지에 대해서는 과학적 논증이 이뤄지지 않았다.
저자는 그동안 과학자들이 우주와 생명의 시원에 대해 진행해온 논의를 '추측'으로 규정하면서 "인간의 과학적 시도는 신화적인 수준을 넘기 힘들다"고 말한다.
그는 두 번째 질문을 탐구하기 위해 생물학적으로 인류에게 붙이는 속명인 '호모'(Homo)라는 용어를 파고든다. 여러 학설에 따르면 유인원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를 거쳐 호모 사피엔스가 됐다.
저자가 보기에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의 특징적 행위는 도구 만들기, 불 다스리기, 취미 즐기기, 요리하기 등이다. 이런 행동을 통해 인류는 인지 능력과 사회성을 폭발적으로 향상시켰다.
그는 인간의 여러 특성 가운데서도 '배려하기'에 주목한다. 호모 에렉투스와 호모 사피엔스 사이에 등장한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가 무기를 발전시켜 나간 양상을 설명하면서 "인간은 자신의 폭력성을 다스리면서 타인에 대한 배려와 이타심을 동시에 길러 나겠다"고 강조한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마지막 질문인 '우리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변으로 의례, 예술, 묵상, 교감 같은 행위를 거론한 뒤 선사시대부터 인류는 '더불어 사는 영적인 존재'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인류가 공동체와 음식을 나눠 먹기 위해 '식사'라는 예절을 만들고, 사냥한 동물이 죽을 때 아픔을 공감하며 의례를 치른 것은 이타심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결국 저자의 주장은 성악설과 성선설 가운데 무엇인 옳으냐는 해묵은 논쟁과 닿아 있다. 다만 책을 읽다 보면 인간 본성을 이기심과 이타심 중 한쪽으로만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겠느냐는 의구심이 든다. 때로는 이기적 존재로, 때로는 이타적인 존재로 보는 것이 합리적일 듯싶다. 428쪽. 2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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