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달임 예약 '0건' 식당 수두룩…매출 30% 줄어
염소·삼계탕으로 대체…도축 염소 18%, 닭 25%↑
(청주=연합뉴스) 심규석 기자 = 청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유명한 한 보신탕 전문 음식점 주인은 이번 초복(12일)을 맞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해가 갈수록 매상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올해 초복처럼 황당한 경우는 처음 겪었기 때문이다.
복날 며칠 전부터 예약이 몰렸던 예전과 달리 이날 점심·저녁 예약이 단 1건도 없었다.
이 식당 주인은 "복날이라 손님들이 몰릴 것으로 보고 지레 피한 것 같다"며 "다른 식당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애써 위로했다.
그는 "지난 1일부터 일찌감치 복달임하려는 고객들이 줄을 이었다"고 말했지만 복날 보신탕을 즐겨 먹었던 세태가 바뀌면서 해가 갈수록 매상이 줄어들고 있는 현실은 어쩔 수 없이 인정했다.
그는 "단골은 꾸준히 찾아오지만 전체 매상은 작년보다 10∼20% 줄어든 것 같다"고 털어놨다.
청주 우암동의 또 다른 유명 보신탕집에는 최근 복달임 하려는 고객들로 연일 북적거린다.
직장 동료끼리, 혹은 부모를 모시고 찾아오는 가족 단위 손님들로 점심과 저녁 예약이 꾸준히 몰리면서 초복 특수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이 음식점의 '효자' 메뉴에서 보신탕은 이미 오래전에 뒤로 밀려났다.
염소 전골·수육을 주문하는 손님이 주류를 이루는 반면 개고기를 찾는 손님은 눈에 띄게 줄었다.
이 식당 주인은 "반려견을 키우는 가구가 늘면서 개고기에 대한 거부감 역시 커지는 것 같다"며 "그나마 염소 고기를 찾는 손님이 늘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보신탕이 복달임의 대명사였던 터라 복날이 되면 으레 "탕이나 한 그릇 하자"고 식사 약속을 하고, 직장 회식의 단골 메뉴로도 올랐지만 이제는 이런 풍경을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반려견을 키우는 인구가 늘고, 보신탕을 둘러싼 논쟁이 치열해지면서 자칫 보신탕을 권하는 것이 결례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하는 것이다.
무더위가 계속되는 요즘 삼계탕집이나 염소고깃집은 점심때가 되면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는 손님들로 북적거리지만 보신탕집은 언제든 가도 자리가 남아돌 정도로 한산한 모습이다.
합법적인 개 도축장이 없는 탓에 식육용 개의 유통 마릿수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개와 함께 보신 음식의 대표 주자 격인 염소나 닭 도축 마릿수가 작년에 비해 부쩍 증가한 것으로 미뤄, 개고기 '대체용'으로 삼계탕이나 염소탕을 찾는 손님이 많아졌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충북도에 따르면 무더위가 일찌감치 시작된 지난달 도내 염소 도축 마릿수는 2천702마리다. 이달 10일까지 도축 마릿수를 더하면 3천802마리에 달한다.
작년 같은 기간 도축 마릿수 3천217마리와 비교하면 18.2%(585마리) 증가했다.
닭 도축 마릿수는 염소보다 훨씬 눈에 띄게 늘었다. 이달 열흘간 도내에서 도축된 닭은 606만6천마리로, 작년 같은 기간 486만6천51마리보다 24.7%(120만422마리) 늘었다.
충북도 관계자는 "초복에서 말복까지 닭·염소 도축량은 매년 증가 추세"라며 "전체 소비량만 놓고 본다면 개고기 수요는 줄고 닭·염소 소비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4년 전부터 청주시 용암동에서 보신탕집을 운영했다는 A씨는 "3∼4년 전보다 손님이 30% 가까이 줄어들었다"며 "계속 운영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털어놨다.
취급 품목을 개고기에서 염소고기로 전환하는 식당도 나타나고 있다.
청주 흥덕구 직지대로의 한 염소탕집은 2년 전만 해도 청주의 대표적인 보신탕집이었다. 당시에도 염소고기를 일부 취급했지만 지금은 아예 개고기 음식을 포기, 염소고기만 전문으로 하고 있다.
인근 상당로의 한 염소탕집 주인은 "2년 전 보신탕집에서 업종을 전환했다"며 "개고기 논쟁을 지켜볼 때마다 매상이 줄까 걱정했는데 지금은 사시사철 손님이 꾸준해 선택을 잘한 것 같다"고 말했다.
관공서 공무원들의 복달임 음식도 개고기보다는 삼계탕·염소탕 중심으로 바뀌었다.
충북도청의 한 공무원은 "예전에는 영양탕이니 사철탕이니 하며 개고기를 찾았지만 요즈음에는 개고기를 먹으러 가자는 직원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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