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내 우경화 요구 거부…군소 보수정당 '이삭줍기' 나서
(시드니=연합뉴스) 김기성 특파원 = "우리 당은 결코 보수정당인 적이 없다. (70여 년 전 당 설립자인) 로버트 멘지스는 온건했고 진보적인 지도자였다."
호주 보수성향 여당인 자유당의 지도자 맬컴 턴불 총리가 당내 보수파의 반발이 불 보듯 뻔한 대담한 발언을 내놓아 당의 이념적 지향을 둘러싼 논란이 촉발됐다.
12일 호주 언론에 따르면 턴불 총리는 지난 10일(현지시간) 영국의 중도 우파 싱크탱크인 '폴리시 익스체인지'(Policy Exchange)가 주최한 강연에서 충격적인 발언을 동원해 자신이 이끄는 정부의 중도 노선을 강조했다.
턴불 총리는 이 자리에서 자유당으로서는 "합리적인 중도가 있어야 할 자리고, 있어야 할 자리에 남아있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턴불 총리는 자신의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1944년 자유당 설립을 이끈 로버트 멘지스를 끌어들였다.
턴불 총리는 "멘지스가 자신의 중도 우파 당을 보수당이라 부르지 않고 자유당이라 칭한 것도 중도 쪽에 확고하게 뿌리내리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강조했다.
멘지스는 호주 노동당에 구현된 노동운동의 사회주의적 전통은 물론 거대 자본이나 재계 기반의 전통적인 보수정당의 정치와도 거리두기를 원했다는 게 턴불 총리의 설명이었다.
이런 턴불의 발언은 전임자인 토니 애벗 전 총리를 포함해 보수성을 강화하라는 당내 일부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셈이다.
예상대로 정치인과 시사평론가를 포함해 보수파 인사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자유당 소속의 빅토리아주 주총리 출신인 제프 케네트는 정치적 판단력의 부재를 여실히 드러냈고 불필요한 말을 꺼냈다며 턴불 총리가 대형은행 증세와 퇴직연금 수혜자 권리 축소로 자유당의 핵심가치에서 벗어났다고 비판했다.
자유당의 고위 관계자도 턴불 총리가 당내 중도파와 보수파의 차이를 교묘하게 과장하려 했다며 양쪽을 갈라놓아 좋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비판했다.
당의 우경화 주장을 이끌었던 애벗 전 총리는 언론이 자신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하는 턴불의 발언에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반면 줄리 비숍 외교 등 주요 각료들은 턴불의 발언이 자유당의 가치를 잘 반영한 것으로 외연 확장용이라고 옹호하며 진화에 나섰으며 다만 당의 보수주의적 지지 기반을 적대시할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서는 자유당의 기본원칙에서 보수주의를 배제한 이번 발언이 보수파를 고립시켜 당내 분열을 악화하고 극우 혹은 보수성향 군소정당의 운신 폭만 넓혀줄 것이라며 우려를 표시했다.
실제로 극우성향 '하나의 국가'당 지도자인 폴린 핸슨 상원의원은 소셜미디어를 이용해 "마침내 확인됐다. 턴불은 우리가 호주 최대 보수정당임을 선언했다. 우리 쪽에 합류들 하시라"라고 반겼다.
올해 초 '호주의 트럼프'를 꿈꾸며 자유당을 탈당, 보수색이 강화된 보수당을 창당한 코리 버나디 상원의원도 자유당에 불만을 가진 보수파에게 손을 벌렸다.
cool21@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