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정성호 기자 = 조석래(82) 전 효성그룹 회장이 14일 ㈜효성의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면서 1966년 동양나일론에 입사해 시작한 그의 기업인 인생이 51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됐다.
사실상 그룹 회장직을 넘겨받은 1981년(효성중공업 회장)부터 따져도 36년 만에 그룹 총수에서 물러나는 것이다.
또 효성그룹은 창업주인 조홍제와 2세인 조석래를 거쳐 3세 경영인들인 조현준 효성 회장, 조현상 효성 사장 등 '3세 경영' 체제로 완전히 넘어갔다.
조석래 전 회장은 일본 와세다대 이공학부와 미국 일리노이 공과대학원에서 공부한 공학도였다. 이런 공학도 특유의 꼼꼼함은 공장 현장 등을 둘러보며 세심한 부분까지 살펴보고 지시하는 업무 스타일로 이어졌고, 그로 인해 '조 대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꼼꼼함은 기술 중심주의와 품질경영으로 이어졌고, 효성이 오늘날 스판덱스 시장에서 '크레오라'라는 간판상품으로 점유율 1위에 오르는 토양이 됐다.
이 스판덱스 연구개발을 지시한 이가 조 전 회장이었고, 효성의 두 번째 대표상품인 타이어코드(타이어 고무에 넣는 심재)가 세계 1위에 오른 것도 조 전 회장 때인 2000년대 초반이었다.
재계의 리더 역할도 여러 번 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장(2007∼2010년), 한미재계회의 한국 측 위원장(2000∼2009년), 한일경제협회장(2005∼2014년) 등을 맡았다.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은 조 전 회장의 팔순을 기념해 발간된 기고문집에 쓴 글에서 1990년대 초 조 전 회장이 정부에 쓴소리를 했던 일화를 소개하며 '재계 지도자였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당시 은행들이 기업에 대출하면서 적금 등을 강제로 가입하도록 하는 '꺾기' 관행이 있었는데 전경련을 방문한 국회 재무위원회 앞에서 이를 신랄히 비판했던 것이다.
한미 또는 한일 경제계 간 가교 역할도 많이 했다. 2006년 미국과의 FTA(자유무역협정) 협상 때 양국의 반대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양국 재계 인사, 미국 행정부·의회의 유력인사들을 만나고 다니며 설득하기도 했다.
후쿠다 야스오 전 일본 총리와도 각별한 사이다. 야스오 전 총리는 팔순 기고문집에 실린 글에서 "조 전 회장은 나의 와세다대 동창이자 소중한 친구"라며 "조 전 회장이 2005년부터 2014년까지 한일경제인회의의 한국 측 대표로 회의를 주도한 데 대해 경의를 표한다"고 썼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같은 기고문집에서 '미스터 글로벌'이라고 불렀다. 조 전 회장이 국제관계의 중요성을 잘 알고, 한국 기업들의 해외경영 확대를 지원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조 전 회장은 생전에 경영권을 승계함으로써 사후 승계가 일반적인 한국 대기업의 경영권 승계 문화에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 것으로도 평가된다.
여기에는 조 전 회장이 고령으로 건강이 악화된 사정도 한몫했다. 수년 전 담낭암이 발병한 데 이어 전립선암도 생겼고, 발작성 심방세동 진단도 받으면서 7년째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재판이 진행 중인 것도 경영에 부담이 됐다고 재계는 보고 있다. 탈세와 횡령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과 벌금 1천365억원을 선고받은 가운데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2014년 벌어진 효성그룹 '형제의 난'도 조 전 회장에게는 큰 상처다. 둘째 아들인 조현문 전 효성중공업 PG 사장은 형 조현준 회장과 임직원들을 검찰에 고발한 뒤 회사를 나갔다. 이후로 사실상 의절한 상태다.
지난해 12월 조 전 회장이 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나고 조현준 당시 사장이 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이미 3세 경영은 개막했다.
이번에 대표이사직마저 내려놓으면서 일선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됐다.
효성 관계자는 "고령에 건강이 안 좋은 데다 조현준 회장 체계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경영이 안정화됨에 따라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됐다"며 "앞으로 자문 역할 정도만 수행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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