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태국 군부가 해외로 도피한 정치인의 궐석재판을 가능케 하는 법을 만들자 탁신 친나왓트라 전 태국 총리를 겨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일고 있다.
15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태국 군부가 주도하는 과도의회인 국가입법회의(NLA)는 최근 부패 정치인의 재판 절차를 담은 법안을 만장일치로 처리했다.
새 법에는 부패 혐의를 받는 정치인이 해외로 도피한 경우라도 대법원 형사부가 궐석재판 진행 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법은 과거 행위에 대해서도 소급 적용된다.
따라서 지난 2008년 권력남용 및 부정부패 혐의로 실형을 받기 2주 전에 해외로 도피한 탁신 전 총리도 궐석재판의 대상이 된다.
당시 법원은 탁신에 대해 제기된 6건의 사건 중 심리가 마무리된 토지거래 관련 1건에 대해서만 2년의 실형을 선고했지만, 나머지 5건의 부패 혐의에 대한 재판 진행은 피의자 부재를 이유로 중단했다.
미얀마에 대한 차관 불법 승인, 특별 복권 발행 과정의 불법 행위, 휴대전화 및 위성회사에 대한 특별소비세 감면, 국영 은행에 대한 대출 지시, 전 부인의 국영 토지 헐값 매수 등이 아직 재판에 넘겨지지 않은 탁신의 부패 혐의다.
비판론자들은 새 법이 탁신을 겨냥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NLA 측은 특정인을 겨냥한 입법이 아니며 부패를 저지르고 도피한 정치인을 포괄적으로 처벌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궐석재판 허용 자체에 대한 비판도 나오고 있다.
NLA 위원인 타니 온-라이앗은 "궐석재판을 허용하는 것은 유엔 세계인권선언에 반하는 것이며 위헌 소지가 있다"고 비판했다.
또 사법재판소 사무총장인 아티꼼 인타라푸티 사무총장은 "첫 심리만이라도 피고인 측이 입회하도록 하는 것이 사법정의를 위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범죄인 인도 등을 요청할 때 공정성 시비가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탁신 일가는 빈곤퇴치를 강조한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정책으로 2000년대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 모두 승리했지만, 부정부패를 만연시켰다는 비판도 받았다.
지난 2006년 군부 쿠데타로 실각한 탁신은 2008년 법원에서 권력남용과 부정부패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을 위기에 처하자 해외로 도피했다.
그는 태국 정부가 발행한 여권이 무효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몬테네그로 등 외국에서 발급받은 여권으로 여전히 세계 곳곳을 활보하고 있다.
그의 뒤를 이어 총리에 오른 여동생 잉락도 지난 2014년 군부 쿠데타로 축출됐으며, 재임 시 행한 쌀 고가수매 정책으로 인해 1조 원이 넘는 벌금형을 받았고, 관련 부패를 묵인한 혐의로 조만간 징역형에 처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탁신계 정당인 푸어타이당에서는 10명의 탁신 형제 가운데 여덟째인 몬타팁 코빗차런쿤(58 여)을 차기 총재겸 총리 후보로 세우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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