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출신 수제기타 제작가 이정복씨…10년 후 내 모습 그리다 2막 준비
이천에 '세라 기타문화관' 짓고 기타 제작·작곡·연주·강습 등 음악가 삶
(이천=연합뉴스) 이우성 기자 = "마음이 심란할 때 10년 후 내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는 습관이 있는데요, 2005년 어느 날 '내가 좋아하는 건 음악인데 지금 뭐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어요. 자연스레 이제 내 인생을 찾아보자고 결심했죠."
지난해 8월 경기도 이천시 신둔면 예스파크(옛 이천 도자 예술촌)에 전국에서 유일하게 기타모양으로 디자인한 기타하우스(세라 기타문화관)가 들어섰다.
대지 660(200평)㎡ 위에 건축 연면적 430㎡(130평) 규모의 3층짜리 건물인데 주인은 전직 공무원인 이정복(59)씨다.
이달 17일 아침 세라 기타문화관을 찾아 1층 공연장에서 그를 만났다.
공연장 안에는 수제기타 여러 대가 여기저기 눈에 띄었고 작업실 구석에는 기타를 만들 때 쓰는 작업 도구와 재단된 자재 목들이 널려 있었다.
1층에는 연주 및 워크숍을 할 수 있는 공연장과 수제기타 전시실과 작업실이 있고 2층에는 자택과 게스트하우스, 3층에도 방문객을 위한 숙소가 있다. 지방에서 온 기타 동호인들이 하루를 묵어갈 수 있도록 숙박시설까지 갖춘 것이다.
30여 년간 공직생활을 한 그를 음악가로 이끈 건 12년 전 깨달음이었다.
"성남시청 6급 팀장으로 일하던 2005년에 외부기관에서 1년간 장기교육을 받을 기회가 있었어요. 그때 강사 한 분이 한 달간 과제도 없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지내라며 방학을 줬어요. 처음엔 낚시도 하고 너무 신났는데 열흘 지나고 보니 시간이 너무 안 가고 지루하더라고요. 그때 깨달았죠."
그는 "'퇴직 후 내가 이렇게 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더군요. 10년 후 내 모습을 그려봤는데 어릴 때부터 곡 쓰는 것을 좋아했으니 음악가로 살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는데 나쁘지 않았다"고 했다.
50세가 다 된 나이에 기라성같은 작곡가들과 경쟁하는 건 힘들겠지만, 수제기타를 만드는 장인이 되면 괜찮겠다는 '답'을 얻었다.
이후 기타 제작 기술을 익히기 위해 전국에 있는 장인을 찾아다녔다.
공직생활을 병행하면서 2007년부터 주말 틈틈이 경기도 고양에 사는 한 장인으로부터 꼬박 4년간 수제기타를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
'어찌 보면 음악가보다는 목공기술자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는 한 번 더 욕심을 냈다.
2009년 주말과 야간을 이용해 서울문화예술대 실용음악학과에 입학해 작곡 공부를 시작했다.
음악가라면 악기 연주는 물론 곡도 직접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이처럼 2막 인생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는 동안 아내와 아들은 이런 가장의 뜻을 묵묵히 지지하고 격려했다고 한다.
인생 2막 설계는 퇴직 1년 전부터 구체화했다.
그는 2010년 이천에 기타 하우스를 지을 대지를 샀고 2011년 6월 5급 사무관 승진의 유혹을 뿌리치고 사표를 내 30여 년(성남시+이천시)의 공직생활을 마감했다.
설계도면 작업부터 집을 짓는 일도 건축사 사무실에 맡기지 않고 직접 맡아 했다. 시간이 더 걸렸지만 지난해 8월 이씨가 꿈꾸던 기타 하우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세라 기타문화관장인 그의 직함은 여러 개다.
회원이 400명에 육박하는 통기타 동호회인 '이천·여주 통기타클럽'(이여통) 단장이기도 하다.
이 동호회는 매달 한 차례 기타 하우스에서 정기모임을 갖고 봄·가을로 자체 공연은 물론 전국 통기타 페스티벌도 열고 있다. 기타 강습에도 열성이다.
이 관장이 만드는 수제기타는 부드러운 소리를 내고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어 소장가치가 있는 명품 기타로 명성이 자자하다.
수제기타 주문은 밀려들지만, 강습, 동호회 활동, 기타문화관 운영 등에 시간을 할애하다 보니 지난해와 올해 몇 대를 만들지 못했다.
"수제기타는 최고 원목을 쓰는데 넥(손가락판 뒷면)은 마호가니, 손가락판은 흑단, 앞판은 가문비나무, 옆·뒤판은 로즈 우드로 만들어요. 보통 300만 원짜리 수제기타를 한 개 만드는데 꼬박 한 달이 걸려요."
기계로 찍어낸 공장 기타보다 고가이다 보니 수요가 많지 않아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그때 제작한다고 했다.
"주문받은 것 말고 제가 선호하는 기타(300만원 짜리)를 만들면 동시에 10대를 제작할 수 있는데 이것도 6개월이 걸려요. 1년에 고작 20대를 만들 수 있는 건데 이래선 먹고 살기 힘드니 강습도 나가고 그러는 거죠"라며 멋쩍게 웃었다.
그는 "내 인생인데 내가 행복하면 그만"이라고 했다. 이어 "지금은 1층 공연장을 무료 개방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최소한 경비는 받고 대관하려고 한다"며 "10년 후 이곳 기타문화관이 전국 각지 동호인들이 찾는 놀이터가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 씨는 "인생 2막을 준비한다면 지금 무엇을 결심해도 늦지 않은 나이"라며 "다만 결심은 과감하게 하되, 준비는 꼼꼼히 해야 후회가 없다"고 조언했다.
gaonnu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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