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방문자는 여전히 협상카드"…美·이란 관계악화로 불똥튀나
(뉴욕=연합뉴스) 김화영 특파원 = 미국 프린스턴대 대학원생인 중국계 미국인 시웨 왕(37)이 이란에서 '학술조사 활동' 중 간첩죄로 10년형을 선고받은 것을 놓고 미국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과거에도 끊임없이 발생한 이란의 미국인 억류라는 외교 악재가 또 돌출한 형국이 됐다.
이번 사건이 불안해질 조짐을 보이는 양국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관측과 함께 가장 비정치적 영역으로 남아 있는 양국 학술교류활동에도 치명타가 불가피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중국 베이징에서 태어나 19살 때 미국에 유학을 온 왕은 현재 미국과 중국 국적을 모두 가진 이중국적자라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19세기∼20세기 초 유라시아 역사를 연구하는 프린스턴대 역사학과 박사 과정 4년 차로, 이란에서 카자르 왕조를 연구하다 작년 8월 이란 당국에 체포됐다.
스파이 혐의로 법정에 서서 16일 10년형을 선고받았다.
이란 사법부의 골람호세인 모흐세니 에제이 차석 수장은 그가 미국의 지시를 받고 있었다면서 '잠입자'라고 불렀다.
이란은 왕이 학자로 위장해 입국한 뒤 거미줄망 같은 비밀 커넥션을 갖고 미국과 영국 정보기관을 위해 일했다고 보고 있다. 4천500개의 문서를 디지털 파일로 보관했다는 게 그의 죄목이다.
미국은 전면 부인하고 있다.
미 국무부는 성명에서 "이란 정권이 계속 미국인과 다른 외국인들을 날조된 국가안보 관련 혐의로 억류한다"고 비난하면서 석방을 촉구했다.
1년 가까이 조용하게 석방 노력을 해온 프린스턴대는 언급을 자제하며 '로키'로 대응했으나, 왕을 잘 아는 교수와 학생들은 격앙했다.
왕의 박사 논문 지도교수인 스티븐 코트킨은 "왕이 테헤란서 읽고 수집한 문서들은 이미 100년도 더 된 것"이라며 간첩죄라는데 어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친구들은 온라인에 "왕은 뛰어난 학자이고 동료", "이란이 정신 나갔다", "왕은 스파이와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두둔했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의 개방 공약이 '공염불'이라는 비난과 더불어 그에 반대하는 이란 강경파의 목소리가 반영된 조처라는 분석도 나왔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버핏국제문제연구소의 브루스 캐러터스 소장은 "식은땀이 나는 사건"이라며 "이란 방문자가 여전히 협상 카드로 이용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우려했다.
이란 핵 합의를 끌어냈던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정부에서의 '훈풍'이 이 합의의 폐기를 다짐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정부에서 '삭풍'으로 변해가는 흐름 속에서 왕의 신병 문제는 주목되고 있다.
미 국무부는 17일 이란이 핵 합의를 준수하고 있다면서도 탄도미사일 개발·확산, 테러단체 지원, 시리아 내전 개입 등을 거론하며 이란이 의심의 여지 없이 핵 합의의 기본정신을 이행하지는 않는다고 비판했다.
미국은 이어 18일 이란 제재의 '칼'을 다시 빼들었다.
이란의 탄도미사일 개발 및 테러단체 지원 활동과 관련해 개인과 단체 등 18곳을 신규로 제재했다.
국무부는 제재를 발표하면서 이란 정권이 부당하게 억류한 미국인과 외국인을 석방하라고 거듭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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