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검찰에 입증부담 지우고 불리한 진술 원천봉쇄…이재용 피하기도
법정 출석 거부, 사법부 무시 태도로 비칠 수도…"양형에 불리" 견해도
(서울=연합뉴스) 송진원 기자 = 박근혜 전 대통령은 도대체 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에 나오지 않는 걸까.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기를 거듭 거부하면서 그 배경을 두고 여러 분석이 나온다.
박 전 대통령은 1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 부회장의 재판에 증인으로 소환됐지만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이에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박 전 대통령을 증언대에 세우겠다고 법원에 요청해 구인영장까지 발부받아 이날 오전 집행에 나섰지만 박 전 대통령이 '버티기'로 맞서면서 결국 증인 소환에 실패했다. 이로써 지난해 2월15일 서울 삼청동 안가에서 박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이 3번째 독대한 후 1년 5개월만의 대면은 또 무산됐다.
박 전 대통령이 증언을 거부하는 표면적인 사유는 일단 건강상의 문제와 자신의 재판 준비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은 최근 왼쪽 발가락 부상을 이유로 본인의 재판에도 3차례나 불출석했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박 전 대통령의 증언거부에 고도의 재판 전략이 깔린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우선 '묵묵부답'으로 맞서 검찰이나 특검 측의 혐의 입증을 어렵게 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있다.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은 둘 만의 독대 자리에서 부정한 청탁을 하고 그에 대한 대가로 뇌물 수수를 합의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둘 사이에 실제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는 당사자들만 아는 상황에서 두 사람 모두 공소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특검은 아예 박 전 대통령을 직접 조사하지 못한 상황이다. 이 부회장은 장기간 조사를 받았지만, 혐의를 일관되게 부인해왔다. 변호인단은 "두 사람의 독대 내용이 확인되지 않았고 어떤 합의도 없었으며 당사자는 이를 부인하는데 특검은 근거 없이 마치 직접 대화를 확인한 것처럼 공소사실을 구성했다"며 "도대체 어디서 확인했는가"라고 반격해왔다.
박 전 대통령이 계속 증언을 거부하면 특검으로서는 당사자의 직접 진술이 아닌 간접 사실이나 정황들로만 이 부회장의 혐의를 증명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이 부회장의 무죄는 곧 자신의 혐의와도 직결되는 문제여서 '이중 노림수'라는 해석이 나온다.
법정 증언을 아예 거부함으로써 본인 재판에 미칠 악영향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전략도 엿보인다.
박 전 대통령은 특검 측이 신청한 증인이다. 증언대에 설 경우 특검의 질문 공세가 불가피하다. 특검 측이 쏟아내는 질문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무심코 내뱉은 말이 자신의 재판에 불리하게 작용할 우려가 있는 만큼 아예 그런 가능성을 배제하겠다는 의도일 수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앞서 자신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이 부회장 등 삼성 관계자들처럼 증언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 하지만 특검 측의 질문 내용에 따라선 증언 거부가 인정되지 않을 수도 있다. 재판부가 판단해서 '그 부분은 답변을 하시라'고 지휘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편에서는 단독 면담했던 이 부회장과 법정에서 대면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자체가 큰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이 이처럼 증언을 거부하는 게 본인 재판에 유리하지만은 않다는 관측도 적지 않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무작정 증언을 거부하는 것은 사법부나 법적 절차를 무시하는 태도로 간주될 수 있다.
최진녕 전 대한변호사협회 대변인은 "만약 뇌물죄가 유죄로 인정된다면 법정에 출석하지 않으려 한 모습은 양형에 상당 부분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최 변호사는 "일국의 대통령이었던 분이 구인영장까지 거부한다는 건 사실 국가 공권력을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떳떳하다면 법정 증언을 통해 본인의 무고함을 밝히는 게 역사에 당당한 모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헌법재판소도 탄핵심판에서 박 전 대통령이 검찰과 특검 수사를 거부한 점을 지적하며 "법 위배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할 헌법 수호 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비판한 바 있다. 수사 거부 행태가 오히려 부메랑이 돼 탄핵 심판에도 영향을 미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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