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 인생플랜] ⑬ 무술 45단 고수로 돌아온 퇴직 경찰

입력 2017-07-29 09:02  

[100세 시대 인생플랜] ⑬ 무술 45단 고수로 돌아온 퇴직 경찰

울산청 전 지능범죄수사대장 송상근씨 "현직 때보다 더 바빠"

평생 무예 사랑…"킥복싱·무에타이 보급에 남은 인생 바칠 것"

(울산=연합뉴스) 김용태 기자 = "공직에 있을 때도 머리 한쪽은 킥복싱 생각으로 가득했습니다. 이제 은퇴했으니 다른 사람 눈치 볼 일 없이 내 뜻을 펼칠겁니다. 마음이 아주 홀가분합니다."

27년간 경찰관 생활을 뒤로하고 세계프로킥복싱무에타이총연맹 회장이라는 직함으로 새 인생을 시작한 송상근(61)씨.


이달 19일 울산시 남구 한 체육관에서 만난 그는 흰색 도복을 입고 사각 링 위에 올라 발차기 시범을 보였다.

60대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다리는 목표물을 향해 재빠르게 다가갔고, 손은 가슴팍에 단단히 고정돼 있었다. 간단하지만 절도있는 동작이었다.

그는 "아무래도 몸이 예전 같지 않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태권도 9단, 합기도 9단, 킥복싱 9단, 무에타이 9단, 비공인 무술인 권격도 9단 등 무려 45단의 단수가 말해 주듯 송씨는 평생에 걸쳐 격투기를 수련하고 사랑해왔다.

지난해 말 울산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장이라는 직함을 마지막으로 정년퇴직한 그는 이제 킥복싱 전도사로서 전국을 누비며 현직에 있을 때보다 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는 킥복싱 단체의 회장으로서 전국 곳곳에서 열리는 대회를 방문해 챔피언 트로피를 시상하고, 체육관을 찾아 선수들을 격려하며 킥복싱과 무에타이 저변 확대에 힘쓰는 중이다.


그는 "4, 5월에는 함안과 거제에서 열린 킥복싱·무에타이 대회장을 방문했고, 10월에 김해에서 열리는 대통령 취임 기념 국회의장기 킥복싱 대회에도 참석해야 한다"면서 "연맹 회장직을 맡고 있어 서울에도 자주 가야 하기 때문에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송씨와 격투기의 첫 만남은 중학교 1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당시에 태권도 좀 한다고 하면 괴롭히는 사람이 없었다"면서 "그렇게 배우기 시작한 것이 결국 여기까지 온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태권도 체육 특기자로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도 대표로 전국대회에 출전해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1985년 그는 킥복싱과 태권도를 가르치는 체육관을 차리고 대한프로킥복싱협회장직을 맡으며 한동안 대회 개최와 킥복싱 보급을 위해 온 힘을 쏟았다.

그리고 5년 후인 1990년, 34살이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도 무도 특채로 경찰에 들어가게 되면서 인생의 전환기를 맡게 된다.


송씨의 경찰 생활은 화려했다.

뛰어난 무도 실력을 이용해 울산의 폭력 조직이었던 신목공파 조직원 18명을 검거하는 등 조폭 일망타진에 큰 힘이 됐다.

경찰 생활 중 검거한 조폭만 200여 명에 달할 정도로 그는 울산에서 '조폭 잡는 경찰'로 이름을 떨쳤다.

3차례 특별승진과 대통령 표창을 포함한 30여 차례의 표창을 받으며 강력범죄 소탕에 앞장섰다.

그러나 범죄와 싸우는 바쁜 경찰 생활에서도 그의 가슴속에는 늘 킥복싱이 자리 잡고 있었다.

형사로 재직하고 있을 때도 대한프로킥복싱협회장직을 맡으며 체육관을 운영하고 있던 그는 어느덧 국내 킥복싱계의 최고 권위자가 돼 있었다.

야간 근무 등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틈틈이 체육관에서 제자를 가르치며 후배 양성에 힘쓰는 한편, 비행 청소년들에게 킥복싱을 가르치며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 경찰관으로서 본연의 임무가 더 중요하긴 했지만 늘 머리 한쪽에서는 킥복싱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털어놨다.

킥복싱 등 격투기의 어떤 점에 매료됐느냐는 질문에 "무엇보다 재미"라며 "그보다 더 큰 이유를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공직에서 은퇴한 이후 송씨는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홀가분하다고 한다.

"경찰 신분이었을 때는 아무래도 '킥복싱 외도'를 한다는 것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 몸과 마음이 자유롭다"는 그는 "내 뜻을 마음껏 펼칠 기회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도 아침마다 체육관에 가서 수련한다.

적지 않은 나이지만 여전히 후배들에게 기술을 전수해 주기도 한다.

송씨에게는 킥복싱·무에타이 단체의 회장으로서 더 큰 목표가 있다.

그는 "킥복싱과 무에타이가 지금보다 더 큰 인기를 얻을 수 있도록 알리고 보급하는 데 여생을 바치고 싶다"며 "회장으로서 부담감과 책임감이 크지만,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또 "운동을 하고 싶어도 형편이 어려워서 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에게 도움을 줘 그들이 꿈을 가질 수 있게 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은퇴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누구나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전문 분야와 노하우가 있으니 그 능력을 썩히지 말고 제2의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면서 "남은 인생을 절대 무의미하게 보내지 말라"고 당부했다.

yongta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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