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지난 15일 서울 잠실 샤롯데씨어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나폴레옹'은 대극장 뮤지컬이 줄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세 시간이라는 공연 시간에 꾹꾹 눌러 담은 작품이다.
화려한 배우진, 쉴새 없이 전환하는 거대한 무대 장치와 눈을 즐겁게 하는 다양한 기술 효과, 고음으로 내달리는 웅장한 음악 등은 비싼 티켓값을 지불한 관객들을 공연 시간 내내 흐뭇하게 한다. 실제 제작비 60억원이 투입됐다.
이야기에도 멜로와 코믹, 배신, 액션, 비장미 등을 모두 담아내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그러나 모든 장면과 모든 대사, 모든 캐릭터에 힘을 주려 하다 보니 극은 오히려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피곤해진다. 모든 것이 과한, 강약 조절이 부족한 극이란 인상을 남긴다.
극은 초반부터 숨 가쁜 템포로 내달린다.
코르시카 섬 하급 장교 출신의 나폴레옹이 차별과 열등감을 딛고 전장의 영웅으로 떠오르는 과정, 운명적인 여인 조세핀과 사랑에 빠지는 모습, 정치가 탈레랑의 조력 아래 프랑스 제1대 황제에 오르는 장면까지 풍성한 1막이 펼쳐진다.
역사적 인물을 소재로 한 극이다 보니 대사와 배경 설명이 많은 편이지만, 비교적 나폴레옹이라는 중심인물이 입체적으로 그려지며 극은 힘 있게 뻗어 나간다.
나폴레옹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혁명을 꿈꾸는 '영웅'인 동시에 권력욕과 야망에 휩싸인 한 '인간', 사랑을 갈구하는 평범한 한 '남자'로 그려진다.
문제는 2막부터다. 1막에서 끝없이 펼쳐놓은 인물과 감정선들이 뒤엉키며 이야기는 집중력을 잃는다.
1막까지 나폴레옹과 운명적인 사랑을 나누던 조세핀이 갑자기 바람을 피우고, 황후 자리에서 폐위되는 장면 등이 대표적이다.
실제 바람기가 다분하던 조세핀의 모습을 반영한 것으로 보이나, 1막에서 그렇게 열정적으로 나폴레옹을 사랑하던 그가 왜 2막이 시작되자마자 갑자기 온천마을에서 젊은 남자와 불륜을 벌이는지 관객들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 같은 이유로 조세핀 뿐 아니라 탈레랑, 나폴레옹 등이 처절하게 무너지는 모습이 차례로 그려져도 객석에는 그들의 절절함이 제대로 와 닿지 않는다.
극이 산만하게 흘러가는 와중에 공연 전반에 '양념'처럼 뿌려진 코믹 요소들도 뒤로 갈수록 점점 더 군더더기처럼 느껴진다.
이런 가운데 배우들의 호연은 빛을 발한다.
지난 18일 나폴레옹 역을 연기한 임태경은 깨끗한 발성과 섬세한 감정 연기로 극의 중심을 잘 잡아줬다. 조세핀 역의 정선아, 탈레랑 역의 정상윤도 다소 정리되지 않은 캐릭터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가창력을 선보인다.
공연은 10월 2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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