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에선 모자란다고 아우성…다른 한쪽선 "우리 동네엔 안 된다"
어린이집은 무조건 1층에…규제도 '걸림돌'
(서울=연합뉴스) 박초롱 이태수 기자 = 17만6천185명.
서울시에서 국공립어린이집 입학을 기다리는 아동 숫자다.
학부모들은 서울시보육포털서비스 홈페이지에 입소 대기를 신청한 뒤 차례가 돌아올 때까지 평균 1년 6개월 이상을 기다린다.
국공립어린이집이 들어선다는 소문이라도 동네에 돌면 그때부턴 '전쟁'이다.
서울 마포구에서 3살, 5살 아이 둘을 키우는 박소정(37) 씨는 "구청 홈페이지에 매일같이 들어가 어린이집 위탁운영 업체가 어디로 선정되는지, 입소 일자는 언제인지 차례차례 확인한 다음 입소 대기 신청일에 '광클릭'을 했다"며 "조금이라도 클릭이 늦어 대기 순번이 밀릴까 봐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른다"고 했다.
부모들은 여전히 믿고 맡길 수 있는 국공립어린이집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이지만, 국공립어린이집을 1천개 더 확충하겠다는 서울시 사업은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
내가 사는 지역에는 위험시설이나 혐오시설을 들일 수 없다는 '님비(NIMBY) 현상'이 확산하고 있어서다.
과거에는 쓰레기소각장, 화장장, 정신병원 등이 기피 시설이었다면 이제는 지역주민을 위한 어린이집 설립도 주민들의 반대에 부닥치고 있다.
서울의 한 자치구는 근린공원 안에 국공립어린이집을 지으려다 일부 주민들과 갈등을 빚었다.
주민들은 교통이 복잡해지고 소음이 생기는 데다, 지역주민의 쉼터인 공원이 훼손된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이들은 '공원 폐쇄 절대 반대'라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구청은 "어린이집은 공원 면적의 0.04%를 차지할 뿐이며, 인근 지역 아동부터 우선 입학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몇 달간 주민들을 설득해 지난 5월 말 겨우 어린이집을 착공할 수 있었다.
강남, 송파, 용산구에선 고급주택 인근이나 아파트단지 내 어린이집 확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지역은 땅값이 비싸 새로 지을 엄두를 못 내고, 그 대신에 기존 아파트 1층을 빌려 국공립어린이집으로 운영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
일선 구청 관계자는 "잘 사는 동네이거나 거주민 연령대가 높을수록 어린이집에 대한 반발이 심하다"며 "아이들이 떠들면 시끄럽고, 통학차량이 드나들면 주차난이 심해진다는 게 가장 큰 이유"라고 말했다.
'어린이집 님비'는 일본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지바현 이치카와시,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등에서 잇따라 주민 반대로 어린이집 개설이 좌절되는 일이 잇따랐다. 어린이집이 부족해 집에 머물게 되는 아동들이 사회 문제로 떠올라 정치권의 화두가 되기도 했다.
서울시가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아파트관리동 어린이집의 국공립 전환에도 장애물이 많다.
우선 민간어린이집에서 다달이 임대료를 받아온 아파트 관리사무소가 관련 법규상 임대료를 내지 않는 국공립어린이집을 선호하지 않는다.
관리동 임대료는 공동주택관리법상 관리규약으로 정한다. 민간어린이집은 수익을 창출하는 기관이라고 보고 매월 임대료를 받지만, 노인정에선 임대료를 거두지 않는다. 민간어린이집이 공익 목적의 국공립어린이집으로 전환하면 노인정처럼 임대료를 받을 수 없다.
서울시가 임대료 보전 차원에서 아파트 시설개선 자금을 최대 1억원까지 지원하고 있지만, 이는 관리소장이나 입주자대표가 쌈짓돈처럼 쓸 수 없는 돈이다.
아파트 주민들의 찬성에도 국공립 전환이 지지부진한 곳도 있다.
입주민 동의를 받는 일과 전환신청은 입주자대표·관리소장 등 관리 주체가 맡게 돼 있는데 이 사실을 잘 모르고 있어서다.
이정미 전국공동주택어린이집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은 "국공립어린이집이 확충된다는 뉴스를 보고 막연히 '우리 동네도 되겠거니'라는 생각만 하고 누구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며 "상황 파악이 빠른 일부 관리소장들만 '시설개선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며 주민을 먼저 설득했다"고 말했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의 한 아파트단지에선 어린아이를 키우는 입주민이 "단지 내에 국공립어린이집을 둘 기회가 있는데 왜 가만히 있느냐"고 나서 전환 신청을 하기도 했다.
결국, 각 구청이 의지를 갖고 적극적으로 정보를 주고, 각 이해관계자를 설득해야 국공립어린이집이 빠르게 확충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어린이집 확충을 제한하는 각종 규제도 걸림돌이다.
어린이집은 '영유아보육법 시행규칙'에 따라 1층에 설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아파트관리동 1층에 노인정이 있는 경우 노인정이 2층으로 옮기지 않는 이상 국공립어린이집을 세울 수 없다.
서울시 관계자는 "엘리베이터를 설치해드리겠다고 제안해도 노인정에서 2층 이동을 반대하는 경우가 있다"며 "1층 일부를 사용할 경우 2층에서도 어린이집을 운영할 수 있도록 예외 규정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chopark@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