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민간→국공립 우수 전환 사례 별하·서현 어린이집
"인건비 보조로 아이들 안심 먹거리에 투자…평가인증 배려 정책 필요"
(서울=연합뉴스) 박초롱 이태수 기자 = 한낮의 기온이 30도 중반을 오르내리던 지난주 서울 성동구 마장동의 '별하 어린이집'. '하늘반'이라는 명패가 붙은 교실에는 6∼7세 아이 15명가량이 선생님과 함께 수업에 한창이었다.
아이들은 둘 셋씩 짝을 지어 나무토막으로 집짓기를 하거나, 빨강·파랑·노랑 등 원색의 장난감으로 놀고 있었다. 선생님의 지도 아래 파란색 물감을 묻혀 붓을 든 아이도 보였다.
다른 방에서는 이보다 더 어린 3∼4세 아이들이 '쌔근쌔근' 낮잠을 청했고, 선생님은 잠이 오지 않는 듯한 한 아이 곁에 머물며 나지막이 이야기를 나눴다.
26일 서울시에 따르면 2004년 '다예린 어린이집'으로 한 교회 건물 1층에 문을 연 이곳은 2015년 11월 국공립으로 전환됐다.
2015년 2∼3월께 지금의 신은순 원장이 교회·구청 측과 논의를 거듭한 끝에 교회 측의 동의를 얻어 국공립으로 전환하기로 하고, 약 2개월에 걸친 공사를 거쳤다.
교회는 지역사회에 기여를 하는 방안을 고심하던 중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해 장소를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봉사가 되리라는 뜻에서 국공립 전환에 흔쾌히 응했다고 한다.
교회는 이를 위해 부지를 15년간 무상 임대하는 조건을 받아들였다. 대신 서울시의 지원으로 2012년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2개월간 대대적인 어린이집 리모델링 공사를 했다.
신 원장은 "국공립 전환 전에 인테리어 업자를 불러 리모델링 견적을 받으니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댈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다"며 "아이들에게 건강하고 좋은 장소를 제공하는 방법은 결국 국공립 전환밖에 없었다. 민간 자본을 투자해서 하기도 무리가 있고, 교회나 개인 차원에서도 거금을 투자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어린이집 리모델링 과정에서 기존 건물에 있던 석면 등 유해물질을 모두 깨끗하게 제거했다. 가구는 니스칠하지 않은 원목으로 들였고, 냉방 기능은 물론 공기 정화 기능을 갖춘 공조 시스템을 천정에 달았다.
현재 별하 어린이집에는 3세 5명, 4세 13명, 5세 13명, 6∼7세 17명 등 총 48명의 아이가 다니고 있다. 교사는 조리사 1명과 보육 도우미 1명을 포함해 모두 8명이다. 운영은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다. 아이들의 부모는 대부분 맞벌이를 한다.
국공립 전환 후 인건비를 서울시에서 지원받고, 호봉까지 인정받게 되면서 교사 1인당 30만원가량 월급이 올랐다. 처우가 좋아지면서 선생님들이 더욱 의욕적으로 교육에 임해 아이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게 신 원장의 생각이다.
신 원장은 "교사 인건비를 지원받으면서 어린이집 운영도 훨씬 안정적으로 할 수 있게 됐다"며 "민간 어린이집 가운데에서는 경영이 어려운 곳도 적지 않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별하 어린이집은 아이들에게 유기농 급식과 간식을 먹이고 있다. 작은 파 하나라도 일반 식재료보다 2배 이상 비싼 유기농이다. 그러다 보니 한 끼에 일반 급식 단가보다 500원가량 비싼 2천500원이 들어간다.
학부모도 만족도가 높아 올해 장애전담시설로 옮긴 아이 1명을 빼고는 아무도 어린이집을 나간 이가 없다고 했다. 보통 6∼7세 아이는 종종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바꾸는 경우가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마포구 합정역 인근에 있는 '서현 어린이집'도 국공립으로 전환한 보육시설이다.
2014년 12월 한 교회 부설 민간 어린이집으로 문을 연 이곳 역시 임대료를 받지 않는 조건으로 2016년 3월 국공립으로 전환됐다. 대신 서울시로부터 교사 인건비를 지원받는다.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 운영하며 영유아 60명을 맡는다.
서현어린이집 정희영 원장 역시 국공립 전환의 장점으로 교사 처우 개선을 꼽았다.
정 원장은 "민간 어린이집에서는 선생님 호봉을 꼬박꼬박 올려주기 어렵다"며 "마음 같아서는 경력에 따라 올려주고 싶지만, 어린이집이 빚더미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 처우에 신경을 써야 아이에게도 좋은 환경이 만들어진다"고 강조했다.
이곳은 인건비도 보조받고, 교회에 임대료도 내지 않는 대신 친환경 유기농 먹거리에 투자한다. 현재 급식비 단가가 영아 1천745원·유아 2천원인데 친환경 유기농 식재료만 사용해 끼니당 2천800원을 쓴다고 한다.
정 원장은 "1천원 차이가 무척 크다"며 "고기도 국내산으로만 쓰고, 플레인 요구르트도 유기농 친환경 제품만 사용한다. 영유아 발달 과정에 꼭 필요한 먹거리를 제공하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지역 시세가 보증금 1억5천만원에 월세 1천만원이다. 수도세도 한 달에 60만원, 전기세는 70만원씩 나온다"며 "민간 어린이집은 생존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국공립 전환을 통해 경영 실적에 구애받지 않는 안정적인 운영을 하면서 보육의 질도 저절로 올라갔다는 설명이다.
이 어린이집에 다니는 학부모 신현정(36)씨는 "선생님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아이들을 교육하는 점이 좋다"며 "식사 메뉴도 아이들이 제대로 자랄 수 있도록 영양이 균형 잡혀 있고, 유기농 먹거리로 신경을 써 주는 것도 좋다"고 만족스러워했다.
이어 "민간 어린이집은 오후 3∼4시면 아이들을 데려와야 하는데, 국공립은 퇴근 이후인 오후 7시 30분까지 운영하는 것도 큰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학부모 김민정(35)씨는 "한 달에 3만∼5만원을 내고 있다"며 "민간 어린이집은 10만원 안팎이고, 유치원은 30만∼50만원이다. 비용이 적게 드는 점도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핵심 시정 과제 가운데 하나로 '국공립어린이집 1천 개 확충'을 추진 중이다.
태어나자마자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도 세 살이 되도록 여전히 기다리는 등 국공립어린이집에 들어가기가 '바늘구멍에 낙타 들어가기'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시가 의욕적으로 민간 어린이집의 국공립 전환을 추진하는 만큼, 그에 따른 행정적 편의 지원도 베풀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어린이집은 '평가인증'을 받아야 조리사 인건비를 지원받는데, 국공립 전환으로 새 시설 취급을 받는 통에 기존 인증이 유효하지 않아 지원에 '구멍'이 생기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별하 어린이집 신은순 원장은 "조리사 인건비가 한 달에 180만∼190만원이 드는데, 국공립 전환 이후 평가인증을 새로 받기까지 8개월이 걸렸다. 그만큼의 인건비는 어린이집 자체 비용으로 댔다"며 "이미 인증을 받은 어린이집을 국공립으로 전환하는 때는 같은 절차를 면제해 주는 등의 방안을 보건복지부에서 검토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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