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합" 비판하며 막판 표결 참여…야권공조 붕괴로 제1야당 위상에 상처
"세금으로 공무원 증원 안 돼" 원칙 지켰다 '자화자찬'
(서울=연합뉴스) 김경희 기자 = 1박2일 마지막까지 롤러코스터 같았던 국회의 22일 추가경정예산 처리 과정에서 자유한국당의 처지는 '왕따'에서 막판 '캐스팅보트'까지 양극을 오갔다.
사실 전날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의당, 바른정당과 손잡고 3당 주도의 본회의 처리 강행 입장을 밝힐 때만 해도 한국당은 속수무책 끌려가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막판 정세균 국회의장 주재로 본회의를 이날 오전 9시30분으로 미뤄놓기는 했지만, 다른 정당의 깊숙한 물밑 협상 과정에 고스란히 배제됐다가 부랴부랴 본회의 참여로 회군할 때까지의 상황은 '종속 변수'로 전락한 제1야당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게 사실이다.
본회의 표결 개시 직후 집단퇴장으로 정족수 부족 사태가 발생해 결국 추경 통과의 마지막 결정권이 한국당 손에 넘어오는 반전이 벌어졌지만, '신사협정'을 어겼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도록 스스로를 옭아맨 측면도 크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이날 본회의 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토요일에 추경이 통과된다는 것은 정상적인 것은 아니다"며 "비정상적이고 정략적 야합에 의해 통과되지만 다른 야당의 야합에 의해 참여 안해도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며 본회의 참여의 정당성을 설명했다.
한 당직자는 "사실 제1야당이 고립되는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은 게 사실"이라며 "추경에 반대하는 상황에서 나머지 당이 정족수를 채우지 못했는데, 우리가 굳이 들러리로 표결까지 성사시켜줄 이유는 없었던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치권 안팎에선 기존 양당제 구도가 붕괴된 데다 보수정당마저 분열해 초유의 교섭단체 4당 시대를 맞아 여야의 이합집산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는 등 국회 환경은 완전히 달라졌는데, 한국당 지도부는 막판 야3당 연대의 구심을 확보하지 못한 채 여당에 끌려다니며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쟁점법안이 아닌 추경 처리에서 제1야당을 고립시키는 이례적인 상황 조성에 "정치적 야합"이라고 반발하고 나섰지만, 사실 적기 대응에 실패해 스스로 존재감을 약화시켰다는 자조섞인 내부 비판도 나온다.
실제 이날 오전 의원총회에선 "이러려면 뭐하러 오늘 회의를 하느냐"는 볼멘소리가 터져나왔다. 밤늦게 연락을 돌리기는 했지만 의원들이 지역구로 흩어져 있던 탓에 참석자 수도 40여명에 불과했다.
무엇보다 더불어민주당이 야3당과 각각 물밑 협상을 벌이며 각개격파를 시도하고 국민의당이 민주당과 한국당 사이에서 교묘한 줄타기를 하는 정황이 여러 차례 포착되는데도 한국당은 이를 방기, '뒤통수를 맞는 상황'을 자초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마지막 본회의 '퇴장' 카드 역시 정족수 부족이라는 외부 변수가 만들어준 고육지책이었을 뿐 한국당이 자력으로 만들어 낸 묘책은 아니었다.
이래저래 한국당으로선 달라진 4당 구도의 한계를 또 한번 실감하며, 원내 전략 재정립 필요성을 다시 느끼게 되는 지점이었던 셈이다.
한 재선 의원은 "여당도 문제지만 원내 지도부가 무력했다"면서 "사실상 손놓고 있다가 3당연합에 판판이 당하고 있는 것 아니냐"면서 전략 부재를 질타했다.
한국당은 그럼에도 원칙적 승리를 자위했다.
정 원내대표는 "세금으로 공무원을 늘려서는 안 된다는 우리 입장을 관철해낸 것이 의의"라며 "추경에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견지했고, 4천500명에 달하는 공무원 증원 규모를 2천명 선으로 줄인 것은 성과"라고 말했다.
당 소속 예결위도 별도의 자료를 배포해 "한국당은 잘못되고 졸속적인 추경을 바로잡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면서 "그 결과 1조2천816억원을 감액하고 1조1천297억원을 증액해 당초 추경안보다 1천537억원이 삭감된 11조4천억원으로 조정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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