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 강제이주 80년] ⑤ '통곡의 역'에서 부른 '우리의 소원'

입력 2017-07-24 08:37   수정 2017-07-24 15:28

[고려인 강제이주 80년] ⑤ '통곡의 역'에서 부른 '우리의 소원'

"꿈에 그리던 모국은 통일 한반도"…라즈돌노예역 추모식서 노래

최재형 고택 공사 한창…"내년 4월 기념관으로 꾸며 개관할 예정"



(우수리스크<러시아>=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23일 오후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 인근의 라즈돌노예역. 인적은 없고 화물차만 이따금 지나는 한적한 간이역에 '우리의 소원'이 울려 퍼졌다.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 기념사업회'가 진행하는 '극동시베리아 실크로드 오디세이-회상열차' 탐사단원들의 제창이었다. 공동대회장 함세웅 신부의 집전으로 추모식을 올리며 통일을 염원하는 노래로 마무리한 것이다.

이날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한 84명의 탐사단은 오후 러시아 블라디스토크공항에 내린 뒤 우수리스크로 향하는 길에 이곳에 들렀다. 함 신부는 단원들에게 모국의 의미를 상기시키며 희생자와 통일을 위한 묵상과 기도를 제안했다.

"경기도 안산의 고려인마을에서 30대 동포 여성을 만나 모국에 온 까닭을 물었습니다. 한국이 어머니 품처럼 느껴져 한국어를 못하면서도 오고 싶었다는 겁니다. 강제이주로 희생된 고려인들이 죽는 날까지 꿈에도 그린 것은 바로 그 어머니 품과도 같은 고향과 모국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나라는 그분들이 생각하던 조국이 아닙니다. 그분들의 염원과 희생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소원이자 그분들이 꿈에 그렸던 소원을 이루기 위해 기도합시다."

기도에 앞서 집행위원장인 이창주 상트페테르부르크 석좌교수는 이곳이 1937년 9월 9일 연해주 일대에서 가장 먼저 고려인들을 집결시켜 기차에 태워 보낸 기차역이어서 '통곡의 역'이라고 부른다고 설명했다. 작은 1층 역사(驛舍) 어디에도 당시의 비극을 떠올리게 할 만한 흔적도 없고 아무런 표지판도 달려 있지 않다.


이어 들른 우수리스크의 최재형 고택은 연해주에서 손꼽히던 갑부의 집치고는 아담하다 못해 초라하게 느껴졌다. 러시아 이주 초창기에 건너와 무역업과 군수업 등으로 큰돈을 번 최재형 선생은 고려인들에게 '페치카'(난로란 뜻의 러시아어)란 별명으로 불리며 평생 모은 재산을 애국계몽운동과 항일독립운동에 쏟아부었다.

연추(煙秋·얀치헤)와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 등지에서 살다가 1919년 이곳으로 옮겨온 최재형 선생은 마지막까지 이 집에서 살았다. 그는 일본군이 고려인촌을 습격해 학살한 1920년 '4월 참변' 때 붙잡혀 총살당했다.

이곳은 오랫동안 방치되다가 2014년 재외동포재단의 도움으로 고려인민족문화자치회가 러시아인으로부터 매입했다. 고려인민족문화자치회는 최재형 선생의 유품과 사료를 전시하는 기념관으로 꾸미기로 했으나 자금난 등으로 진척이 부진하다가 현재 공사가 한창이다.

최재형기념고려인지원사업회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역사 전문 가이드 조미향 씨는 "이 집에서 딸과 함께 살던 선생은 피신할 수도 있었지만 가족과 다른 고려인들에게 피해가 미칠 것을 우려해 일본군에 끌려나가 생을 마쳤다"면서 "내년 4월이면 공사가 완공돼 관람객을 맞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탐사단이 우수리스크에서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고려인문화센터. 한눈에 보기에도 규모가 꽤 크고 건물도 번듯하다. 당시 고려인문화센터 건립추진위원장을 맡아 동북아평화연대를 비롯한 NGO들과 힘을 합쳐 정부와 국민의 지원을 끌어낸 이부영 전 국회의원이 이번 행사의 공동대회장으로 방문해 의미를 더했다.

고려인민족문화자치회가 운영하는 이곳은 각종 문화예술 교육과 공연분 아니라 정보화 교육과 진료 등이 이뤄지고 있으며 고려인뿐 아니라 다른 민족에게도 개방된다.

환영사에 나선 김니콜라이 고려인민족문화자치회장은 "이곳을 지어주고 중앙아시아 이주 80주년을 특별히 기억해주셔서 한국 국민과 정부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고려인문화센터는 탐사단의 방문을 맞아 '1937 통곡의 연해주 진혼문화제'를 열었다. 고려인 3세와 4세로 이뤄진 공연단은 탐사단에게 전통검무, 부채춤, 북 합주, 한국가요 독창, 합창 등을 선보였다.

무대 뒤에 내걸린 플래카드 문구 가운데 회상열차 주최 측 명칭이 한국과는 다르게 '고려인 중앙아시아 정주 80주년 기념사업회'라고 적힌 것이 눈길을 끌었다.

이창주 집행위원장은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은 거주국 정부나 현지인과의 마찰을 우려해 강제이주 대신 정주(定住)라고 쓰고 있으며, 카자흐스탄도 외교 채널을 통해 명칭을 바꿔 달라고 요청해 왔다"고 귀띔했다.

탐사단은 2층에서 공연을 관람한 뒤 1층의 고려인 역사관을 둘러봤다. 고려인문화센터가 개관할 때 함께 문을 연 이곳은 우리나라의 국립민속박물관이 전면 보수에 나서 지난해 12월 새로 문을 열었다.

1860년대부터 지금까지 연해주 고려인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안내판과 함께 농기구, 생활용품, '아리랑' 관련 자료, 영상 모니터 등을 갖추고 있다.

우수리스크 일대의 유적, 공연, 전시 등을 둘러본 탐사단원들은 "그동안 고려인들의 슬픈 역사를 잘 알지 못했던 것이 부끄럽다", "이념의 잣대 때문에 배제돼왔던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사도 우리 역사로 복원해야 한다", "책에서만 고려인의 역사를 대하다가 직접 와서 눈으로 보고 고려인들을 만나 보니 더욱 실감이 난다", "24일 저녁부터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강제이주 루트를 따라가는 여행길이 더욱 기대된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heeyo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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