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마 밑 마당 모기장서 쪽잠"…수해주민들 '노숙자 생활'

입력 2017-07-25 07:02   수정 2017-07-25 11:16

"처마 밑 마당 모기장서 쪽잠"…수해주민들 '노숙자 생활'

모기떼 극성에 잠 못 이뤄…비닐하우스 빨래 건조장 변신

폭우로 집 물에 잠긴 괴산 주민들 "이런 난리 난생 처음"

(괴산=연합뉴스) 윤우용 기자 = "난리도 이런 난리는 처음 겪습니다…밤엔 '윙윙'거리는 모기떼 때문에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어요"

지난 16일 집중호우로 큰 피해가 난 충북 괴산군 청천면 신도원2구 중리마을 주민 임모(84) 할머니는 한동안 비가 들이치지 않는 처마 밑 마당에 휴대용 매트를 깐 뒤 모기장을 치고 잠을 청했다.




물이 찼던 방이 마르지 않아 장판도 못 깔고 도배도 못 했기 때문이다. 방에 있어야 할 TV도 마당 한구석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구호물품으로 나온 이불을 덮고 잔다.

자원봉사자들이 폭우로 집 앞마당에 처박혀 있던 평상(平床)을 제자리에 갖다 놓았지만, 임 할머니는 한동안 평상에서 자지 않았다. 잠을 자다 떨어지면 크게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임 할머니는 "수해가 난 뒤 마을의 교회에 딸린 방 3곳에서 주민 40여명과 함께 닷새 정도 잤는데 거기까지 가기도 힘들고 자원봉사자들이 집을 어느 정도 정리해줘서 한동안 마당에서 잤다"고 말했다.

임 할머니는 "지난 23일 저녁때는 비가 마구 쏟아지는 바람에 처마 밑 침상에서 잤는데 그나마 이불이 젖어 한숨도 못 잤다"고 말했다.

지금은 방과 방 사이에 있는 콘크리트 바닥으로 된 공간에 잠자리를 마련했다. 방문 요양 보호사가 모기장을 옮겨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콘크리트 바닥이 눅눅하기는 마찬가지여서 편하게 잠을 청할 수 없다. 모기장 바닥엔 휴대용 매트만 깔렸다.

임 할머니 집에서 교회까지는 불과 100여m 떨어져 있지만, 임 할머니는 유모차에 의지해야만 나들이를 할 수 있을 만큼 몸이 좋지 않다고 강경식(65·여) 이장은 귀띔했다.






마을에서 20년가량 향토음식점을 운영해 온 김모(66·여)씨도 식당 홀에서 밤을 보낸다.

김씨의 임시 안방 격인 식당 홀에 있는 물건이라곤 바닥에 깔린 은박지 스티로폼과 얇은 이불, 베개가 전부다.

"방 중간 높이까지 물이 차는 바람에 세간살이 대부분이 못 쓰게 됐어요. 식당에 있던 물건들은 물에 다 떠내려갔어요"

김씨도 식당과 집이 모두 침수되는 바람에 한동안 교회 방 신세를 졌다.

물이 빠지고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살림살이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닷새 전부터 식당 홀에서 지내고 있다.




복구 작업에 속도를 내기 위해서다.

임 할머니와 김씨처럼 불편하게 잠을 청하는 주민이 부지기수라고 강 이장은 말했다.

방이 말라야 장판을 깔고 도배를 할 수 있는 데 사정이 녹록지 않다.

보일러가 고장 난 데다 계속 비가 와 습도도 높기 때문이다. 선풍기를 쉴새 없이 돌리고 있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마을 앞 비닐하우스는 거대한 빨래 건조장으로 변했다.






워낙 큰 피해를 봐 빨래를 널 만한 장소도 마땅치 않아서다.

물난리를 겪었지만, 물이 부족한 아이러니한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주민들은 빗물을 받아 손으로 대충 빨아 빨래를 널고 있다. 세탁기는 물론 크고 작은 가전제품이 많이 떠내려가서다.






먹는 것도 영 신통치 않다.

주민들은 수마가 할퀴고 난 이후 마을 회관 앞 정자에서 함께 아침과 점심, 저녁을 먹는다. 오전 6시, 낮 12시, 오후 6시면 어김없이 '하던 일을 멈추시고 식사하러 오세요'란 내용의 안내 방송이 나온다.

집에서 밥을 지을 수가 없어서다.

군에서 나눠 준 김치와 주민들이 끓인 국으로 허기를 때우기 일쑤다.






음식점이나 봉사단체에서 반찬거리 등을 보내줄 때는 그나마 나은 밥상이 차려진다.

한 마을 주민은 "구호물품을 받는 날에는 그나마 반찬 가짓수가 몇 개 된다"고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말 그대로 22가구 주민들이 멀쩡했던 집을 놔두고 풍찬노숙하는 신세가 됐다.

폭우로 마을 앞을 흐르는 달천이 범람하면서 마을의 저지대 22가구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먹고 마시고 자는 것을 포함해 모든 게 부족하고 불편하지만, 주민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함께 식사할 때는 농담도 건네며 서로의 아픔을 위로해주거나 용기를 북돋워 준다.

이장 강 씨는 "침수됐던 방이 빨리 말라야 장판을 깔고 도배를 하는 데, 비가 또 내린다고 하니 하늘도 무심하다"면서도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부족하지만 빨리 복구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yw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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