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가계 소득 증대→기업활동 개선→경제 성장 선순환 구현 시도
"새로운 시도…적절" vs "소득 확대가 생산증대보다 가격상승·해외소비로 이어질 수도"
(세종=연합뉴스) 김수현 기자 = 정부가 25일 발표한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에는 경제 성장은 소득주도로, 경제 체질은 일자리 위주로 전환하겠다는 소득 주도 성장 5년 청사진이 담겼다.
저성장, 소득분배 악화라는 복잡한 고차 방정식을 풀려면 그동안 소비 활동의 주체이자 분배 활동의 객체로만 여긴 가계를 경제 중심에 놓아야 한다는 것이 현 정부의 시각이다.
이로써 정부가 수출, 대기업을 경기 중심에 놓고 양적 성장에만 매달렸던 과거 경제 패러다임이 막을 내렸음을 선언한 셈이다.
문재인 정부가 제시한 소득주도 성장론을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 기대와 우려가 갈렸다.
다만 재원 조달 방안이 구체적이지 못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 시대에 뒤떨어진 경제 옛 패러다임…곳곳에서 '삐걱삐걱'
문재인 정부의 경제 새판짜기는 현재 한국 경제 문제의 본질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다.
경제 잠재 성장률이 빠르게 떨어지는 현실에서 무엇을 건드려야 실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가 고민의 포인트였다.
한국 경제는 1995년 이전까지 성장률이 연 0.08%포인트 떨어지다가 외환위기를 거치며 연 0.26%포인트씩 하락하기 시작했다.
한 나라의 경제가 성숙하면 성장률이 둔화하게 마련이지만 문제는 한국의 성장률 하락 속도가 심상치 않다는 데 있었다.
미국, 영국, 독일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2009년을 빼면 2000년대 들어 0∼4%대 성장률을 지속했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 미국, 영국, 독일의 경제 규모에 도달하지 못했는데도 경제 체력이 빠르게 떨어지는 추세다.
2002년 이후 지속한 초저출산 현상에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는 점도 한국 경제의 고민거리였다.
여기에 분배마저 적신호가 켜졌다.
한국은 지니계수, 소득 5분위 배율 등 대표적인 소득분배지표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하위권 수준이다. 최근에는 소득 5분위 배율이 2014년 5.41에서 지난해 5.45로 악화하는 등 소득 불평등도가 더 나빠지고 있다.
저성장 고착화, 양극화 심화라는 복합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은 정부가 과거 경제 성장을 이끈 패러다임을 계속해서 유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진단이다.
고도 성장기 정부는 인프라 등 물적 자본 투자를 중심으로 경제를 꾸렸다.
성적표는 경제 성장률, 수출 증가율, 무역 수지 등 숫자로 체크했다.
옛 패러다임에서 보면 고용, 교육, 복지 등 사람에 대한 투자는 후순위였다.
이 때문에 경제가 성장해도 대기업, 수출기업이 과실을 가져가고 가계나 중소기업의 몫은 늘 적었다.
이는 고스란히 가계·기업 사이의 격차, 가계·기업 간 불균형, 내수·수출 불균형으로 이어졌다.
결국 경제 전반의 활력마저 꺾이게 됐다는 것이다.
◇ 경제 중심에 사람을…3% 성장 능력 갖춘 경제로
문재인 정부가 제시한 해결책은 사람 중심 경제다.
성장의 견인차를 수출에서 소득으로 바꾸고 일자리 창출을 복합 경제 위기를 푸는 실마리로 보겠다는 취지다.
일자리 안정지원 자금까지 영세 소상공인에게 지원하며 최저임금 시급 1만원을 달성하겠다고 목표를 세운 것이나 막대한 비용이 수반되는 기초연금 인상(연간 4조4천억원), 아동수당 도입(연간 2조6천억원)에 나선 것은 가계 소득을 늘려주고 취약계층에 적정 소득을 보장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보여준다.
아울러 예산, 세제 등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정책수단도 일자리 창출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는지를 위주로 '구조조정'해 경제·사회 시스템을 고용 친화적으로 개선하겠다는 구상이다.
노동시장 재정투자를 총지출 증가율 이상으로 확대하겠다는 것도 사람 중심 투자, 일자리 최우선이라는 정부의 뜻을 보여주는 대표 정책이다.
이전 어느 정부보다 경제 민주화, 공정 경제 확립에도 신경 쓰는 점도 문재인 정부 경제 정책의 핵심이다.
정부는 담합 근절을 위한 집단소송제를 도입하고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강화하는 등 재벌 대기업의 담합, 총수일가의 편법적 지배력 행사 차단에 중점을 두겠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협력이익 배분제도 도입하기로 했다.
협력이익 배분제는 2011년 동반성장위원회가 추진하려다가 반(反)시장적 제도라는 강력한 반발에 부딪힌 '이익공유제'와 유사한 제도다.
자칫 역풍을 받을 수 있는 민감한 정책임에도 정부가 추진하려는 것은 그만큼 동반성장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중소기업을 육성하는 등 성장 동력을 대기업 대신 중소기업에서 찾겠다는 방침이다.
이 같은 일자리 창출, 가계 소득 증대로 내수가 활성화해 기업 소득이 증대되고 이는 기업 투자 증가와 고용 증대, 일자리 창출이라는 경제 선순환 고리로 연결된다는 것이 정부가 그리는 밑그림이다.
구상대로 되면 정부는 올해와 내년 모두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3.0%를 달성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국 경제는 2014년 3.3%를 마지막으로 3%대 성장률을 달성한 적 없다.
최근 한국은행이 한국 경제의 잠재 성장률이 2%대로 떨어졌다고 진단했지만 정부는 아직 그보다 희망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찬우 기재부 차관보는 "논란이 있으나 잠재 성장률이 3% 내외라고 본다"라며 "소득주도 성장과 혁신 모델을 통해 생산력을 향상하면 3% 성장도 무난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 전문가들 기대·우려 교차…"재원 마련 청사진 나와야" 한목소리
문재인 정부가 시도하는 소득주도 성장론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 기대와 우려가 갈렸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노동과 사람을 중심으로 한 성장 전략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도라고 평가할 수 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박성욱 한국금융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도 "저성장과 양극화 해소를 위해 일자리와 혁신, 소득주도 및 공정 경제를 경제 정책 방향으로 잡은 것은 적절하다"며 현 정부 정책에 힘을 실었다.
반면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시도해볼 이유는 있으나 그것만으로 잠재 성장률이 높아진다고 확신하기 어렵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아울러 그는 "노동소득 확대가 생산 증대보다 가격 상승이나 해외 소비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며 "여가·문화, 의료·건강 부문에 정책 역량을 집중하고 국유지의 활용성 증대, 여가 관련 인프라 구축 등을 통해 내수 산업의 성장을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도 "소득주도 성장은 저성장을 극복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아니다"며 "성장 동력을 발굴하고 이에 맞춰 기존의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득주도 성장론에 대한 시각은 갈렸지만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정책 실현을 위한 재원 조달 방안을 더 구체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성욱 한국금융연구원 실장은 "경제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전환하는 데에는 적지 않은 비용이 수반되므로 모든 국민이 각자의 능력에 맞게 공정하게 비용을 분담하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며 "관련 법령과 예산이 뒷받침돼야 하므로 국민과 정치권의 동의와 참여를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주원 경제연구실장은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므로 대규모 재정 지출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할 구체적인 청사진이 나와야 한다"며 "기업 법인세나 고소득자에 대한 소득세율 인상으로는 급증하는 재정 지출을 충당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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