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인류학자 대니얼 밀러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인류학과 교수는 서울과 베이징, 이스탄불, 리우데자네이루 등 전 세계 대도시를 방문할 때마다 무작위로 지나가는 사람 100명 중 청바지를 입은 사람의 수를 셌다. 그 결과 장소를 불문하고 언제나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청바지를 입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신간 '청바지 인류학'(눌민 펴냄)은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입는 청바지의 다양한 의미를 인류학적으로 접근한 책이다.
밀러를 포함한 인류학자 9명이 청바지를 주제로 쓴 논문 9편을 묶은 책은 청바지를 통해 근대성의 의미를 찾는다.
패션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고민하지 않고 입을 수 있는 평범한 옷인 청바지는 세계에서 가장 글로벌한 옷이다.
그러나 청바지는 동시에 가장 개별화할 수 있는 옷이기도 하다. 일부러 청바지를 낡아 보이게 하는 '디스트레싱' 기법을 통해 청바지를 착용자의 몸에 맞게 바꾸고 개성을 표현할 수 있다.
작업복이던 청바지는 대공황 시기를 거치며 패션으로 변화되고 수용됐다.
자본주의에 대한 불신과 사회 변혁 움직임 속에 미국에서는 리바이스 청바지 차림의 카우보이를 미국 평등주의의 화신으로 내세우는 상업적, 정부 주도의 서사가 양산됐다. 또 1940년대 언론이 참전 중인 남자를 대신해 청바지를 입고 직업훈련을 받는 애국심으로 무장한 여대생들을 다루면서 청바지를 입은 여대생은 애국적이고 실용적이며 절약하는 이미지가 됐다.
인도의 발리우드 영화 속에서는 청바지가 세련되고 매력적이고 자유로운 인도인을 표현하는 요소가 됐지만, 인도의 한 마을에서는 보수주의와 전통주의를 해치는 새로운 문화의 표상으로서 청바지가 저항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책은 법체계나 경제 체제, 정치적 과제 같은 거대하고 추상적인 논의 대신 청바지라는 구체적인 사물을 통해 우리의 현재 모습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공동 역자 중 한 명인 오창현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이 책의 장점은 바로 일상에서부터 전 지구적 수준에서 마주하는 근대성을 실천적 측면에서 다루고 있다는 점"이라면서 "어려운 추상적인 사상가의 철학이 아니라 착용자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해주는 사물로서 일상적인 실천에서 발견되는 철학을 다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니엘 밀러, 소피 우드워드 편저, 오창현·이하얀·박다정 옮김. 368쪽. 2만1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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